영국 '이중간첩 암살시도' 러시아 제재… 외교관 23명 추방

입력 2018-03-14 18:11
미국·EU 등 서방국가 규탄 성명
"영국 수사 요청 땐 지원" 보복 지지
러 "심각한 도발… 용납 못해"


[ 박상익 기자 ] 영국 정부가 러시아계 이중간첩에 대한 암살 시도 사건과 관련해 영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하기로 했다. 단일 사건으로 인한 추방 규모로는 30년래 최대 수준이다.

또 영국인이나 거주민들의 생명이나 재산을 위협하는 데 사용된 증거가 있는 러시아 자산을 동결하고, 위협을 줄 수 있는 러시아인 입국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4일 국가안보위원회 회의 후 이 같은 내용의 대(對) 러시아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정부 및 왕실 인사의 러시아 월드컵 보이콧, 러시아와 예정된 모든 고위급 회담 중단 등 조치도 취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알렉산드르 야코벤코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는 “모든 조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며 “심각한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외무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동을 요청했다. 앞서 줄리언 브레이스웨이트 주제네바대표부 영국 대사는 유엔인권이사회 총회에서 “유엔은 그동안 러시아의 지속적인 국제법 위반을 비판해왔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영국 남부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에서 러시아 이중간첩 출신인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미확인 물질에 노출돼 쓰러졌다. 그는 러시아군 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장교 출신으로 2006년 러시아 정보기관 인물 정보를 영국에 넘긴 혐의로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0년 미·러 스파이 맞교환 때 풀려나 영국으로 넘어왔다.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 12일 하원에서 “스크리팔과 딸이 러시아가 개발한 군사용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에 공격당했다”며 러시아에 책임 있는 해명을 요구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영국의 보복 방침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는 러시아를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메이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국 정부가 수사를 요청하면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오는 22, 23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이 사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