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연극 '닭쿠우스'
[ 마지혜 기자 ]
“곧 공연을 시작합니다. 휴대폰은… 그냥 켜두세요. 급한 전화가 올 수도 있잖아요. 커튼콜을 포함한 모든 공연의 사진 촬영은… 그냥 하세요.”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닭쿠우스’는 안내방송부터 웃긴다. ‘휴대폰을 꺼달라, 사진 촬영은 안 된다’는 통상의 안내방송과 정반대다. 극작가 겸 배우 이철희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일반적인 연극이 갖는 무게감을 공연 전부터 가차 없이 허문다.
극작가 피터 셰퍼가 쓴 ‘에쿠우스’를 번안해 재창작했다. ‘에쿠우스’는 쇠꼬챙이로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찔러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알런’과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다. 다이사트는 알런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인간 본연의 열정을 잃고 무기력함에 빠진 자신과 직면한다.
‘닭쿠우스’는 원작의 설정을 우스꽝스럽게 바꾼다. 소년은 말이 아니라 닭의 눈을 찌른다. 영국 마구간이 아닌 충남 홍성의 양계장이 배경이다. ‘알런’은 알 낳는 꿈을 꾼 아이라고 해서 ‘알란’(이기돈 분)이 되고 박사의 이름 ‘다이사트’는 1 대 1로 붙는다는 뜻의 속어 ‘다이다이’(정나진 분)로 바뀌었다. 알런이 신성하게 읊는 인간 생식의 계보 “프랑스, 프랑스크를 낳고 프랑스크, 플랑커스를 낳고…”는 치킨 메뉴 진화의 계보로 재탄생했다. “전기구이는 프라이드를 낳고 프라이드는 양념을 낳고 양념은 간장, 간장은 파닭으로, 파닭은 볼케이노를 낳았도다.”
작품의 색깔은 ‘위악적인 저질성’에서 나온다. 이철희는 포스터에 ‘밋친, 삐끕, 킷치’(미친, B급, 키치)라고 썼다. 그는 “원작은 말과 알런을 미화하고 현실적 감상보단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며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외피를 벗겨버리고 비하하기 위해 B급 저질 감성을 입혔다”고 했다. 명작에 대한 저항을 통해 연극의 가능성을 넓히고 새로운 의미를 재생산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주제의식은 원작과 닿아있지만 관객을 끌어당겨오는 방식은 좀 다르다. 다이다이 박사는 희곡이 탄생시킨 캐릭터이자 무대에서 다이다이 박사로 관객과 이야기 나누는 인물이자 현실 속 배우라는 세 가지 정체성을 모두 드러내며 혼란스러워하다가 스스로 연극이라는 형식을 깨고자 한다. 관객은 다이다이 박사와 함께 혼란에 빠지고 자신이 삶에서 경험하는 딜레마를 함께 돌아보게 된다.
주로 묵직한 정극에서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여온 배우 이기돈이 알란을 맡아 반소매 티에 핫팬츠 차림으로 등장해서 시종일관 경망스럽게 움직인다. 관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다. 공연은 오는 18일까지, 전석 2만5000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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