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수출길 막힌 중국 철강 경계하라"… 아시아 '도미노 보호무역' 움직임

입력 2018-03-13 18:42
미국 철강수입 제한 조치 23일 시행
중국, 미국 대신 아시아 겨냥

인도철강협회
"중국산 저가 철강 유입되면 시장 왜곡 가능성 높아"
인도 정부, 추가관세 인상 등 검토
태국·인도네시아도 대책 마련 분주


[ 도쿄=김동욱 기자 ] 인도와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산 잉여 철강 제품 유입 공포에 휩싸였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철강 수입 규제에 나서면서 갈 곳을 찾지 못한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시장에 유입돼 현지 산업생태계를 교란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아시아 주요국이 자국시장 보호를 위해 잇따라 수입 철강에 대한 관세 인상이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을 검토하면서 중국산 철강 공습을 막기 위한 ‘도미노 보호무역주의’ 조짐마저 불거지고 있다.

中 ‘잉여 철강’ 아시아로 흘러드나

1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이 수입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한 ‘여파’로 아시아 각국에서 중국산 철강 유입 경계령이 발동됐다.

미국 시장을 겨냥해 생산되던 중국산 철강이 인근 아시아 지역을 대안 판매처로 삼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서명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은 오는 23일부터 발효된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의 지난해 조강(가공 전 철강) 생산량은 총 8억3173만t에 달했다.

전 세계 조강 생산량(16억9122만t)의 49.2%를 중국이 담당한 것이다. 중국 철강업계 구조조정 등으로 지난해 중국의 철강 수출이(7543만t) 전년 대비 30.5%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공급 과잉 상태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인 미국(2017년 3592만t 수입)으로의 철강 수출길이 막히면서 아시아 지역으로 저가에 중국산 제품이 몰려들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인도 등 주요 국가에선 중국산 철강 유입에 대비한 ‘방어’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인도철강협회는 최근 “미국의 철강 수입 제한 결정으로 잉여 생산된 철강이 인도에 유입돼 인도시장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억140만t의 조강 능력으로 세계 3위 철강 생산 국가인 인도조차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저가의 중국산 제품 유입으로 인도 철강업계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인도 4위 철강사인 에사르스틸과 중견 철강업체 부샨스틸은 파산절차가 진행돼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인도 철강산업에 먹구름이 낀 상황에서 이미 세이프가드와 반덤핑 과세 조치를 취하고 있는 인도 정부가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수입 제한 조치 이후 추가적인 대책에 나설 가능성도 작지 않다는 설명이다.

동남아도 중국 철강 경계령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도 대책 마련에 부산하다. 미국으로 수출되지 못한 전 세계 철강 제품 중 2700만t가량이 동남아 시장으로 흘러들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로 유입되는 물량이 3분의 1 정도 늘어나면 철강 제품의 시장가격 급변동은 불가피하다. 특히 동남아 유입 물량의 대부분은 중국산 철강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동남아 국가들의 철강 수입량 중 10%가량만 중국산 철강이었지만, 2016년 30% 안팎으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태국 정부는 미국의 수입 제한 조치 이후 자국 경제에 미칠 충격을 줄이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세이프가드 및 반덤핑 과세, 상계관세 등의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르민 나수티온 인도네시아 경제조정장관도 “중국산 철강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다”고 직접 중국을 거론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인도네시아는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철강에 10~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추가적인 관세 인상도 검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철강 수요는 연간 1300만t가량이며 이 중 절반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정부가 대규모 인프라 개발 정책을 시행 중이어서 철강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싼 철강이 유입되면 자재조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국영 크라카타우스틸 등 자국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어 무턱대고 가격 인하를 반길 수만은 없는 처지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