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잃고 눈 안 보여도… 장애 넘어선 그대들은 이미 '감동'

입력 2018-03-09 19:30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막
패럴림픽은 '인간승리' 무대

왼다리 잃은 '꽃제비' 최광혁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로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자
신장 하나, 심장 반쪽 마스터스
크로스컨트리 유력 우승 후보


[ 박진우 기자 ]
패럴림픽은 인간 승리의 종합세트다. 선수들은 모두 저마다 질병, 유전, 사고 등의 이유로 장애를 지니고도 이를 극복해 일반 성인은 엄두도 내지 못할 성적을 거둔다. 이번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도 ‘드라마’ 같은 인생 굴곡을 딛고 출전하는 선수들이 많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최광혁(31·강원도청)은 함경북도 화성군 출신으로 집도 없이 아는 형, 누나들과 거리를 떠돌던 일명 ‘꽃제비’였다. 먹고 살기 위해 기차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아이스크림 100개(15㎏)가 든 가방을 짊어지고 기차 밖에 매달려 가다가 정차하면 아이스크림을 파는 식이었다. 하지만 13세이던 2005년 5월 발을 헛디뎌 기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마취도 없이 왼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던 2001년 8월 탈북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도움으로 탈북에 성공했다. 그는 장애인 의수와 의족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의료보장구학과에 다니다가 2014년 교직원의 권유로 아이스하키에 입문했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한 그는 올해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그동안 도와준 이들을 위해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꼭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도 바이애슬론 국가대표로 우뚝 선 신의현(40)도 있다. 그는 2006년 2월 사경을 헤맬 정도의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했다. 의식을 찾은 뒤 ‘나를 왜 살려냈냐’고 했을 정도로 좌절했던 그를 일으켜세운 건 어머니였다. “다리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끊임없이 그에게 용기를 보태준 것. 3년간 침울한 삶을 살았던 신의현은 휠체어 농구로 시작해 아이스하키, 휠체어 사이클 등 각종 장애인 스포츠를 배워나갔다. 2015년엔 민간기업 최초 장애인 실업팀인 창성건설 노르딕스키 팀에 합류했다. 이번 패럴림픽에선 유력한 금메달 후보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골키퍼) 유만균(44)은 춘천고 재학 시절 포수로 이름을 날린 전도유망한 야구 선수였다. 고교 3학년 때 사고로 다리에 장애를 입으면서 야구 선수의 꿈을 접었다. 포기하지 않고 휠체어 농구를 하던 유만균은 32세가 되던 해 아이스슬레지하키(장애인을 위한 썰매 아이스하키)에 입문,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로 평창패럴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무려 다섯 번째 동계패럴림픽에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참가한 이도 있다. 세 살 때부터 스키를 탄 브라이언 매키버(39·캐나다)가 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은 19세 때다. 유전성 희귀 난치 질환인 스타르카르트병으로 서서히 앞이 안 보였다. 이런 시각장애도 스키를 향한 매키버의 열정을 가로막진 못했다. 매키버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패럴림픽에 참가한 이후 금메달만 10개를 따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피해자인 옥사나 마스터스(29)는 성조기를 가슴에 달고 크로스컨트리에 출전한다. 199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의 양쪽 발가락은 6개이고 신장은 하나, 심장은 반쪽뿐이다. 태어나자마자 친부모한테 버림받아 보육원을 전전한 마스터스는 1997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마스터스는 2014 소치 동계패럴림픽에서 은, 동메달을 하나씩 목에 걸며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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