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民意)? 표가 더 급하다"… 이익단체 편드는 국회

입력 2018-03-09 18:26
혁신 가로막는 기득권 벽을 깨자

변리사에 특허침해소송 대리권
14년째 발의·폐기 되풀이

원격의료·규제프리존 등
국회에 발목 잡혀 '제자리'


[ 유승호 기자 ] 사회 곳곳의 기득권과 규제를 혁파하려면 대개 법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국회는 기득권을 무너뜨리기보단 대변할 때가 많다. 각종 이익단체의 조직화된 힘과 ‘표의 논리’에 굴복한 결과다.

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주려는 변리사법 개정안은 국회에 14년째 묶여 있다. 현행법상 변호사에게만 허용된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변리사에게도 주는 법 개정안은 지난 17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국회의원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는 일이 반복됐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두 건 발의됐으나 1년 반이 넘도록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두 차례 논의된 게 전부다.

변리사는 지식재산권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특허 관련 소송에서 변리사에게 대리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하지만 변리사법 개정안은 ‘소송 대리는 법률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는 변호사업계의 반발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의원 중 법조인이 49명으로 16%에 달해 변호사들의 논리에 쉽게 동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부여하는 ‘특권’을 폐지한 세무사법 개정안도 국회 통과에 15년 가까이 걸렸다. 2003년 처음 발의된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에야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도서·벽지 주민과 선원,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에 상정도 안 됐다. 현재 의사와 의료인 간에만 허용되는 원격의료를 의사가 환자를 상대로 직접 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원격의료 활성화를 추진했지만 17·18·19대 국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의료 사고와 소규모 병·의원 폐업 등이 우려된다는 게 의료계 반대 논리다. 한 국회의원은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의료노조 등의 조직화된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별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려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은 박근혜 정부 때 여당은 물론 야당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찬성했다. 하지만 이·미용업 등 소규모 자영업자가 많은 분야에 기업이 진출할 수 있다는 ‘골목상권 보호’ 논리에 막혀 국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종교인 과세도 정부가 처음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1968년 이후 50년 만인 올해에야 겨우 시행됐다. 종교인 과세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에 맞지만 종교계가 반발하고 여기에 국회의원이 가세하면서 시행이 늦어졌다. ‘종교인 과세를 미루자’는 과세 유예 법안을 낸 의원 중 상당수가 대형 교회 장로 등을 맡고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