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에… 버스회사·기사 모두 뿔났다

입력 2018-03-08 18:33
"기사에 11시간 연속휴식 줘라" 개정 근로기준법 9월 시행

500여명 여의도서 규탄 집회

"통학·통근 버스 전체의 80%, 법 따르면 다음날 영업 불가"
"시장 포화로 일감부족·구인난·임금 열악… 추가고용도 어려워"
기사들 "소득감소 불가피" 반발… "생계 위해 가욋일 해야할 판"


[ 황정환 기자 ]
대형 버스사고를 막는다는 취지로 오는 9월 시행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두고 전세버스 사업자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근무 종료 후 11시간 이상의 연속 휴식을 규정한 개정안이 전세버스업계는 물론 버스기사들의 생계마저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근무 형태가 다양한 버스업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입법’이란 지적이 노사 양측 모두에서 제기된다.

◆버스업주들 “개정안 시행되면 줄폐업”

전세버스사업자단체인 경기도 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경기전세버스조합)은 8일 서울 여의도동 산업은행 앞에서 ‘전세버스 폐업 촉진하는 개악! 근로기준법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란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서울, 인천 지역 전세버스운송사업 조합원을 포함해 주최 측 추산 5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9월부터 시행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59조의 근로일 종료 후 ‘11시간 이상의 연속 휴식’ 조항을 집중 규탄했다. 개정안이 통학·통근용 셔틀 운행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전세버스업의 현실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이다. 조익환 경기전세버스조합 전무는 “탁상행정법안 때문에 피해는 업주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에게까지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가한 업주들은 개정안을 따르면 정상영업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업무종료 후 최소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려면 기사들이 오후 7시 이전에 퇴근해야 하는데 이는 비현실적인 규제라는 지적이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운전대를 잡아야 해서다.

결국 회사는 더 많은 기사를 고용하고, 근무조를 오전·오후, 오후·저녁으로 나눠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 포화로 일감 부족과 구인난에 시달리는 전세버스업계로선 너무 큰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한 업주는 “근로시간이 줄면 월 200만원 수준인 현재 임금은 법정 최저인 157만원으로 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기사들 “임금 줄어 대리운전해야 할 판”

개정안을 바라보는 버스기사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기사 한 명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서다. 자연히 기사들은 대리운전이나 불법 지입제(개인 소유차량을 운수업체에 등록해 거기서 일감을 받아 일을 한 후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 영업 등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집회에 참가한 화진관광 소속 버스 기사 조상현 씨는 “개정안대로 라면 월급만으로는 식구들을 먹여살릴 수 없어 회사를 속이고 가욋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법 개정 취지인 버스 안전 강화와 어긋나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상급 노동단체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련)은 “이번 개정안이 월급을 받는 기사들의 소득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셔틀버스업 종사 근로자들의 피해를 방지할 보완책을 강구 중이다.

천차만별인 전세 버스기사들의 근무 형태를 감안한 융통성 있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하루 8~10시간을 연속 운행하는 노선버스나 관광버스 등과 셔틀버스는 법 적용이 달라야 한다”며 “불법 지입차량 해소를 통해 전세버스업을 정상화시킬 중장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동차노련 관계자는 “다양한 근로 형태에 맞는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 중”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버스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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