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일자리와 규제'는 모순관계인 현실

입력 2018-03-08 17:55
일자리 강조하며 기업규제 몰아붙이는 정부
기업들은 채용계획 못잡고 청년들은 절망뿐
'나쁜 규제' 걷어내는 국가적 결단 절실하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상반기 대졸신입 채용 계획이 아예 없거나 확정하지 못한 대기업이 절반이 넘는다는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는 충격적이다. 봄 학기 개강을 맞은 대학가에는 졸업을 미루려는 휴학 신청이 대폭 늘었다. ‘일자리 정부’에 걸었던 청년의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일자리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던 이용섭 부위원장은 지방선거 판으로 슬쩍 빠져나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용지원금을 들고 뛰면서 추경 편성까지 거론할 만큼 어렵다. 이런 와중에도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기업 규제 부처는 엄청 바쁘다. 검찰의 기업인 소환은 줄을 잇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법정구속됐다. 일자리 창출에 앞장선 신 회장의 황망한 처지가 안타깝다. 일자리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는데 기업 규제는 날로 강화되는 혼돈의 시대다.

면세점 혼란은 면허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갱신 심사를 강화하는 19대 국회 의원입법 때문에 촉발됐다. 롯데와 SK가 심사에 탈락해 매장문을 닫으면서 직원들이 한꺼번에 실업자가 됐다. 지나친 규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면세점 추가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필자는 2016년 3월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열린 ‘면세점 추가 사업자 선정 여부에 대한 공청회’ 사회를 맡았다. 300석 넘는 좌석이 꽉 찼고 충돌에 대비해 경찰까지 동원됐다. 신규 허가를 얻은 쪽에서는 추가 선정을 반대했고 탈락해 기존 매장을 놀리던 롯데와 SK는 적극 찬성했다. 앞 좌석 청중 몇 명이 사회석으로 올라와 명함을 놓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 송파구의회 의장을 비롯한 구의원들이었다. 그들은 롯데 면세점 주변 식당 등 자영업이 망할 위기라면서 추가 면허를 호소했다.

면세점 추가 확대는 신속히 결정됐다. 심사 결과 백화점을 보유한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 선정됐고 SK는 탈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해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원이 면세점 추가 면허를 위한 뇌물이라며 검찰이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유죄로 판결했다. K스포츠재단은 세법상 지정기부금 수령 대상이고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은 공익법인이다. 재단 출연금은 은행 계좌로 이체됐고 법인세 신고도 마쳤다. 기업 규제 의원입법을 쏟아낸 전국구 의원은 장관으로 등극했는데 직원 일자리를 지키려 몸부림치던 기업주는 교도소에 갇히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어떤 방패도 뚫는 창’과 ‘어떤 창도 막는 방패’를 번갈아들고 소리치던 초(楚)나라 상인이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 등장한 것이다. 창과 방패를 의미하는 모순(矛盾)은 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반대관계는 둘 다 부정해도 문제가 없고 중간이 존재하지만 모순관계는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우면서도 기업 규제를 몰아붙이는 것은 ‘일자리와 규제’가 반대 방향이지만 중간을 찾겠다는 의도다. 현상 유지가 목표인 기업은 경력직 위주로 인원을 보충해 끌고 간다. 그러나 신입 채용 여력을 확보하려면 신규 사업 진출 또는 기존 사업 확장이 필수다. 기업 규제가 강화되고 법인세가 오히려 인상되는 상황에서 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청년이 선호하는 대기업을 놓고 보면 ‘일자리 확충’과 ‘기업 규제 강화’는 모순관계인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새 영화 ‘더 포스트’에서는 위기에 대처하는 워싱턴포스트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의 고뇌가 잘 묘사돼 있다.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30년 동안 은폐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담긴 비밀문서를 놓고 갈등하다가 결국 게재를 결단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변태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사주 가족이 이 영화에서는 ‘직원 일자리’와 ‘신문사 전통’을 지키려는 뜨거운 열정의 결합체로 부각된다. 영화 말미에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하는 등 보복에 나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파멸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의 꼬리가 잡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쁜 규제’의 처참한 말로가 인상적이다.

출자 규제를 비롯한 많은 기업 규제는 효과도 분명치 않고 문제점도 많다. 기업 규제를 혁파하고 청년 일자리에 몰입하는 국가적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leemm@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