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쏟아지지만 '전략'은 부재
독일·일본은 '그들만의 강점' 찾는데
한국은 R&D조차 관료 '밥그릇용'"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문재인 정부가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내놨지만 과학기술계도, 기업도 관심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을 하려면 어느 분야보다 많이 주목받아야 할 5년간의 ‘과학기술 청사진’인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이런 계획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제기될 법도 하다.
박정희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잔재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최상위 법정계획이라고 할 ‘기본계획’은 약 330개, 비슷한 개념의 ‘종합계획’도 120여 개에 이른다는 조사가 있다. 부처당 평균 기본·종합계획이 20개를 넘지 않을까 싶다. ‘계획 공화국’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왜 “되는 일이 없다”는 반응이 쏟아질까.
모방·추격 단계에서 ‘5개년 계획’이 주목받던 때도 있었다. 옛 소련의 초기 ‘국민경제 5개년 계획’,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대표적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정부가 직접 산업을 육성한 걸로 치면 독일·일본도 다를 건 없다. 심지어 막 독립한 미국이 영국 경제에 대항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회주의 계산》에서 지식이 기반이 되는, 복잡한 경제로 갈수록 중앙집중식 계획이나 정부 개입이 통하기 어렵다고 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말은 적중했다. 1980년대 소련 경제의 오작동은 ‘계획 실패’의 전형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계획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과 맞붙겠다며 여전히 5개년 계획으로 추격하는 중국을 예외로 하더라도 그렇다. 미국은 지식 창출의 원천인 과학기술 등 국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대해선 ‘비전’을 끊임없이 내놓는다. 시장에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독일 일본 등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들만의 강점’을 찾고자 한다. 그것도 일관되고 부단한 노력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계획도 진화를 한다. 과학기술처럼 국가 간 전략 경쟁이 치열한 분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 과학기술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략기획단장이 최근 과학문화진흥회에서 발표한 ‘한국과 독일의 국가과학기술계획 비교분석’은 그 의문을 풀어준다.
2000년대 들어 ‘독일병’ 치유의 시작은 노동·복지개혁만이 아니었다. 국가 경쟁력과 혁신 역량의 위기를 감지한 독일은 2006년 개혁 청사진을 내놓았다. ‘첨단기술전략 2020’이었다. 중요한 건 명칭이나 계획 그 자체가 아니라, 1차(2006~2009년), 2차(2010~2013년), 3차(2014~2017년) 등 계승과 업그레이드가 이뤄진 점이다.
독일 정부는 연구비 증액분을 첨단기술전략으로 돌렸다. 독일 상공회의소가 평가를 맡았고, 보쉬 등 대기업과 독일 공학한림원 등은 개혁 동맹 세력으로 합류했다. 독일판 4차 산업혁명인 ‘인더스트리 4.0’은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중국의 부상 등으로 위기를 느끼던 한국은 그 사이 뭘 했는지 복기해 보자. 2004년 과학기술혁신본부 설치(노무현 정부),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설치(혁신본부 해체),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설기구로 설치(이상 이명박 정부),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설치(국과위 해체), 2015년 과학기술전략본부 설치, 2016년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전략회의 설치(이상 박근혜 정부), 2017년 과학기술혁신본부 부활, 2018년 통합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출범(이상 문재인 정부). 조직을 만들고, 해체하고, 다시 붙이느라 시간 다 보냈다. 그런 소동 속에 과학기술기본계획은 1차(노무현 정부)→2차(이명박 정부)→3차(박근혜 정부)→4차(문재인 정부) 등 정권 따라 춤춰 왔다.
진흥이란 법이 만들어지면 5개년 계획은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게 한국이다. 조직이 생기고 예산이 나온다. 과학기술 분야 부처별 중장기 계획만 120개에 달한다는 판국이다. 과학기술이 관료들 ‘밥그릇용(用)’으로 전락한 게 아니라면 이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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