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산학상생 실험… "열정페이 악습 깰 것"

입력 2018-03-06 19:11
대학·기업간 장벽 허물고 대기업 첫 선진국형 현장실습

대학 17곳에서 45명 뽑아 반도체 공정·설계 4주 실습
현직 직원과 1 대 1 멘토링… 학생들에게 120만원 실습비

"살아있는 현장경험 큰 도움… 조금 더 일찍 접했더라면…"


[ 박동휘/구은서 기자 ]
“저학년 때 이런 기회가 있었더라면 대학 생활 자체가 달라졌을 거예요.”

SK하이닉스 현장실습 수료식이 열린 지난달 21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만난 신예은 씨(경북대 전자공학 4학년)는 “4주간의 현장실습을 통해 ‘실무에서 필요한 이론’이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장을 경험해보니 내 관심사를 실무에 녹이려면 어떤 대학 강의를 들어야 할지가 뒤늦게 머릿속에 그려졌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올해 대기업 최초로 대학생 현장실습제를 도입했다. 한국공학한림원 인재양성위원회와 손잡고 산학협력 모델을 고민한 결과다. 학생이 개별적으로 기업에 응시하는 인턴제와 학교가 참가자를 선발해 기업에 보내는 방식이다. 중소기업에 만연한 ‘열정페이’식 실습이 아니라 현장 엔지니어의 업무에 투입된다.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등 17개 대학에서 선발된 45명이 반도체 공정·설계 등의 분야에서 실습했다. 자기소개서, 면접 등 각 대학의 선발 과정을 거친 학생들의 전공학점 평균은 3.9점이다. SK하이닉스는 이들에게 120여만원의 실습비, 현직 직원들과의 1 대 1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지원했다.


‘열정페이’ 아닌 ‘산학상생’ 모델 도전

그간 대기업들은 채용면에서 ‘갑’의 지위를 누려왔다. 이력서 중심의 공채시험제도를 고수해도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의 인재들이 알아서 찾아왔다. 현장실습이 주로 일손이 달리는 중소기업에서 이뤄진 이유다. SK하이닉스가 기존의 관행을 깨려는 건 열정페이로 불리던 현장실습제를 선진국형으로 바꾸자는 취지다.

김대영 SK하이닉스 상무는 “현장실습은 기존 인턴제와 달리 대학과 기업 간 협력 프로그램”이라며 “실습을 마친 학생들은 돌아가서 학교에 피드백을 주게 되고, 기업으로서도 풀리지 않는 이론적인 문제들을 대학에 요청하는 식으로 상생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들과 SK하이닉스는 현장실습을 통해 현장과 대학 강의 간 괴리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건 1970년대 이론이라 지금은 현장에서 쓰지 않는데…”라면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인재양성위원장인 김우승 한양대 에리카 부총장은 “이번 현장실습제는 산학협력의 새로운 모델”이라며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선점할 수 있고,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것을 즉각 교육 커리큘럼에 반영하는 등 선순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가 치켜세운 ‘워털루대 모델’

미국 등 해외에선 이미 현장실습형 인턴십을 산학협력 모델로 활용 중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최고의 대학’으로 치켜세운 캐나다 워털루대에서는 학생들이 재학 중 4개월씩 4~6차례 기업에서 현장을 경험한다. 참여 학생의 취업률은 95.6%에 달하고, 일반 학생보다 평균 15%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게 학교 측 분석이다. 학생 1인당 연간 벌어들이는 수입만 1만달러 정도다.

국내에선 현장실습이 열정페이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6년 기준 전체 현장실습생 15만4233명 중 41.2%는 무보수로 현장실습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학협력 측면에서도 현장실습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존의 산학협력은 허울뿐인 경우가 허다해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한다며 산학협력 과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며 “교수들은 논문이나 보고서로 실적을 증명하는 터라 기업이 원하는 정확한 분야에 집중해 연구하는 일은 드물다”고 꼬집었다. 연구 기간이 2년 정도로 너무 길어 그사이에 기업 담당자가 바뀌는 일도 숱하다.

구은서/박동휘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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