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특사단 성과
특사단, 김정은과 4시간12분 면담 후 귀환
문 대통령, 친서 통해 '비핵화 로드맵' 제시
북한 "김정은, 허심탄회한 이야기 나눴다"
미·북 대화 위한 '진전된 언급' 여부 주목
[ 손성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 대표단 파견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등 한반도에 ‘해빙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특사단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4시간여 접견과 만찬회동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중요한 합의’를 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여러)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도 “최고영도자(김정은) 동지께서는 남측 특사로부터 수뇌 상봉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해 들으시고 의견을 교환하시었으며 만족한 합의를 보시었다”고 보도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북·미대화 등 ‘여건 조성’을 강조해온 만큼 김정은이 핵·미사일 도발 중지를 포함한 비핵화 문제를 직접 언급했는지가 주목된다. 북한 매체는 비핵화 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의 ‘여건 조성’
문 대통령이 강조한 ‘여건’의 핵심은 북·미대화다. 남북이 먼저냐 북·미가 먼저냐의 순서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으로선 비핵화를 의제로 하는 북·미 간 ‘탐색적 대화’에 이어 후속 협상 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남북정상회담을 강행하는 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특사단 편으로 보낸 친서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는 한편 선임특사인 정 실장을 통해 핵 동결에서부터 폐기까지 이르는 북핵 해결의 ‘로드맵’을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양측이 이날 정상회담 추진을 시사한 것에 비춰볼 때 김정은이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에 전향적 입장을 밝혔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 경우 문 대통령으로선 북·미 간에 비핵화 대화를 ‘중재’할 여건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고, 미국을 상대로 ‘탐색적 대화’에 응하도록 설득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변수다. 가령 김정은이 핵·미사일 실험의 잠정 중단을 조건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했다면 ‘최대한의 압박’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대북특사 비핵화 접점 찾았나
김정은이 대북특사단과의 접견에서 한반도 정세 전환의 열쇠가 될 비핵화및 북·미대화와 관련해 어떤 언급을 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인 비핵화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는 물론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협상테이블에 올렸을지도 주목된다.
김정은이 핵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의 브리핑이나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를 보면 김정은과 특사단은 비핵화 문제를 의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도 김 위원장이 “남측특사대표단 일행과 북남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시키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 대하여 허심탄회한 담화를 나눴다” “조선반도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북과 남 사이의 다방면적인 대화와 접촉,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해나가기 위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고 보도했다. 비핵화와 북·미대화 등에 김정은의 진전된 언급이 있었을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한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에 올려 놓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직접적으로 비핵화 의향을 밝혔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날 김정은의 핵 문제 관련 발언 수위를 추측하면서 “북한이 그동안 밝혀온 내용을 크게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인 예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잠정 중단 의사를 밝히며 오는 4월께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취소를 요구했을 개연성도 일각에서 거론된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