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번위스키의 바닐라향, 비밀은 오크통에 있다

입력 2018-03-06 17:26
이유정 기자의 알고 마시는 위스키


[ 이유정 기자 ]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 등 유럽 위스키에서는 과일 맛이, 미국 버번위스키에서는 바닐라 풍미가 난다고 한다. 원재료나 첨가물 때문에 이런 맛과 향의 차이가 생길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이유가 있다. 술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참나무통) 때문이다.

몇백 년 전만 해도 위스키는 보드카 등 다른 증류주처럼 무색무취였다. 위스키와 다른 증류주가 구분되는 역사적인 ‘사건’은 18세기 초 위스키 규제 때문에 발생했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통합(1707년)되고 주세가 부과되자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세금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고, 수입 포도주를 담았던 빈 오크통에 밀주를 담아 숨겼다.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오크통을 열어 보니 마술 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알코올의 거친 맛이 부드러워지고, 오크통에서 나오는 각종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황금빛 술로 변해 있었다. 위스키의 오크통 숙성이 대중화된 것은 1850년대 전후로 알려져 있다.

같은 오크라도 어디서 자랐는지, 얼마나 태웠는지 등에 따라 다른 맛의 위스키를 만들어 낸다. 아메리칸오크는 상대적으로 빨리 자라서(100년 미만) 가지가 곧고 조직이 치밀하다. 캐러멜, 바닐린 함유량이 높아 위스키의 쓴맛을 줄여준다. 버번위스키가 바닐라 향이 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러피언오크는 보통 100~150년 동안 천천히 자라 나무의 기공이 큰 편이다. 숙성될 때 위스키 증발량이 많긴 하지만 산화작용이 활발해 향과 색이 좋아진다.

맥캘란 등 고급 싱글몰트위스키 브랜드들은 “셰리오크에서 숙성했다”는 점을 내세우곤 한다. 셰리오크는 세계 3대 와인 생산국인 스페인의 특산품 ‘셰리와인’을 한 번 숙성시켰던 오크다. 이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위스키에 과일향과 꽃향기가 배어든다. 과거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위스키 대부분이 셰리오크통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수급문제 등으로 미국 버번오크통을 쓴다. 셰리와인의 생산량이 줄면서 셰리오크통 ‘품귀’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버번오크통은 버번위스키를 한 번 숙성시켰던 오크통이다. 미국에선 위스키법상 반드시 불에 그을린 새 오크통에서만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버번오크통이 꾸준히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버번오크통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과일향과 꽃향기 위주였던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다양한 풍미를 지니게 됐다는 평가도 많다. 오크통은 위스키를 보관하는 용기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원료 중 하나라고까지 전문가들은 말한다.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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