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자 역할 촬영 힘들어… 매일 악몽 꿨죠"

입력 2018-03-02 19:36
영화 '괴물들' 주연 이원근


[ 박슬기 기자 ] “작품을 하면서 힘든 적이 별로 없는데 영화 ‘괴물들’은 정말 힘들었어요. 나날이 고통스러웠죠. 악몽도 계속 꿨어요. 많은 어른이 이 영화를 보고 학교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8일 개봉하는 김백준 감독의 영화 ‘괴물들’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재영 역을 연기한 이원근(사진)의 말이다. 재영은 학교에서 일명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인물이다. 그들이 시키면 1분 안에 빵을 사와야 하고, 이유 없이 맞는 일도 다반사다. 담뱃불로 몸을 지지고, 온몸을 그들이 낙서로 도배한다. 고통스럽고 외롭지만 기댈 곳은 없다. 어른들은 마냥 참으란다. 재영은 점차 괴물이 돼간다.

“학교폭력이 갈수록 심해지는 건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다가가서 힘이 돼줘야 하는데 어른들은 모두 방관하죠. 아이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꾸짖거나 그저 바라보기만 해요.”

이원근은 재영 역을 더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체중을 4㎏이나 뺐다. 그 정도쯤이야 싶지만 187㎝의 키에 63㎏은 심각한 저체중이었다. 그는 “갈비뼈가 보일 만큼 빼서 재영의 연약함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가해자 역인 이이경보다 키가 커서 제가 피해 학생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살을 뺐죠. 원래 저체중이었는데 여기서 살을 빼려니 힘들었죠. 남들 10㎏ 줄이는 것만큼 노력했습니다.”

영화에서 계속 맞고 괴롭힘을 당한 이원근은 “담뱃불로 몸을 지지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촬영할 때 제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촬영이 끝나면 지쳐 잠들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괴물들’이 ‘15세 관람가’가 아니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데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본 어른들이 불량한 학생들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한 번이라도 손을 내미거나 말을 걸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원근은 영화 ‘괴물들’을 비롯해 ‘환절기’ ‘여교사’ 등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동성애자, 선생님과 사랑에 빠진 학생 등을 연기했다. 표현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거나 소외된 인물들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의 인생사와 감정에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이원근은 TV와 스크린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캐릭터를 선보여왔다. TV로는 최근 종영한 ‘저글러스’를 비롯해 ‘추리의 여왕’ ‘굿와이프’ ‘발칙하게 고고’ 등을 통해 대중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데 비해 스크린에선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은 다양성 영화들을 택했다.

“전략적인 건 아니에요. 상업영화든 다양성 영화든 뭐든 하고 싶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서 무엇이든 잘 어울리는 무채색 같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박슬기 한경텐아시아 기자 ps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