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팝니다
앤디 자이슬러 지음 / 안진이 옮김 / 세종서적 / 412쪽 / 1만7000원
[ 마지혜 기자 ]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소녀에게 왕자는 필요 없다’ 등의 문장을 새긴 티셔츠, 스마트폰 케이스, 에코백 등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극성 페미니스트의 구호’ 정도로 치부했을 문구다. 하지만 요즘은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도 세련된 장식처럼 여겨진다. 할리우드 여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페미니즘 액션 영화’라고 알려지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대중화한 만큼 여성의 기회와 권리는 높아졌을까. 1995년 페미니즘 잡지 비치(Bitch)를 창간하고 20년 넘게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써온 앤디 자이슬러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페미니즘을 팝니다》를 통해 “페미니즘이 유행어처럼 쓰이는 동안에도 페미니즘 운동의 전진을 위해 필요한 사안들은 오히려 퇴보를 거듭했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페미니즘 상업화에 있다. 페미니즘이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해 ‘껍데기’만 소비될 뿐 ‘알맹이’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시장 페미니즘’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정치와 분리돼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사회의 변화가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자아실현에만 초점을 맞추는 페미니즘을 뜻한다.
미국의 다이어트용 냉동식품 제조업체 린쿠진은 ‘여성 투표권, 전업주부 아빠, 볼륨업 브라, 린쿠진 피자’를 냉동피자 광고 문구로 내걸었다. 여성의 투표권 획득과 성역할 고정관념 타파 등 페미니즘이 이룬 주요 성취의 연장선에 자사 제품을 놨다. 저자는 “다이어트 피자라는 것이 애초 존재할 필요가 없는 세상 또는 적어도 그런 상품이 오직 여성에게만 홍보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과 소비자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해방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고 했다. 페미니즘과 시장 페미니즘 사이에도 꼭 그만큼의 간극이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페미니즘의 상업적 활용 자체를 나쁘게 보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런 물건을 소비하면서 ‘사회 페미니즘이 전진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우려한다. 상업화된 페미니즘은 성폭력과 남녀 임금격차, 육아휴직 등 사람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문제는 파고들지 않는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미지만 남기고 지향하는 가치와 투쟁은 가린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정말 성공했다면 지난 5~6년간 낙태에 관한 주정부 규제가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는 뭘까. 왜 토론자와 전문가 중 유색인종 여성 수는 실제 인구 비율에 비해 적을까. 왜 여성들은 트위터에 스포츠에 관한 의견을 표현하면 강간과 살해 위협을 당할까”라고 묻는다. 페미니즘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이 열풍을 재검토해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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