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마크로노믹스

입력 2018-02-27 18:06
고두현 논설위원


프랑스의 지난해 4분기 실업률이 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프랑스 기업의 인수합병(M&A) 규모는 지난 10년 사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벤처투자 규모 역시 사상 처음으로 영국을 앞질렀다.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구글이 새 인공지능(AI)센터를 열기로 했고, 페이스북은 5년간 1000만유로를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 도요타도 3억유로를 들여 프랑스 북부 공장을 확충한다고 발표했다. 높은 세율을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났던 기업인들을 뜻하는 ‘비둘기’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를 ‘마크롱 효과’로 설명하면서 그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마크로노믹스(Macronomics)의 효과가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고 말한다. 마크로노믹스의 핵심은 노동개혁과 기업 활성화로 각종 규제 사슬에 묶인 프랑스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마크롱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이를 준비해 왔다고 한다.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보좌관 시절에는 ‘상위 1%에게 75%의 고세율을 매기겠다’는 올랑드의 대선 공약을 철회시키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400억유로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책임 협약’을 성사시켰다.

2014년 경제산업디지털부(현 재무부) 장관 때에는 경제활성화와 고용 촉진을 위한 규제개혁법인 ‘마크롱 법’을 통과시켰다. 파리 번화가인 샹젤리제 등 관광지구 상점의 일요일·심야 영업 제한을 풀었다.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꺼낸 카드도 노동개혁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10년째 1%대 저성장률에 10%에 육박하는 실업률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마크로노믹스의 첫 효과는 산별 교섭 대신 기업별 교섭 허용으로 나타났다.

그는 노동개혁 과정에서 주요 노조를 100회 이상 방문하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강경파의 반대 시위에는 “게으름뱅이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며 맞섰다. ‘부자 감세’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유로존 최고 수준이던 법인세(33%)를 2022년까지 25%로 낮추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공무원 12만 명 감축 등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이어 최근에는 ‘철밥통’으로 유명한 국가철도공사 개혁에 나섰다. 그의 강력한 추진력에 대해 서방 언론이 ‘벨벳 장갑 속의 강철 주먹’이라는 애칭을 붙이자 그는 “프랑스를 스타트업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마크로노믹스의 동력은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마크롱의 경제감각에서 나온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재무부를 거쳐 로스차일드에서 M&A 전문가로 일하며 실물경제와 금융 감각을 익혔다. 자유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르네상스(부흥)’ 물결 앞에서 새삼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