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조직위원장 인터뷰 - 올림픽 개막까지 험난했던 여정
국조실서 조직위원장 제안… 거절한 다음날 임명 발표돼
부임 후 최순실 게이트 터져 여론 악화·조직위 근간 흔들
"올림픽 반드시 성공시키겠다"
바흐 IOC위원장과 약속 지키려 사직서 안내고 이 악물고 버텨
문 대통령 올림픽 지지발언 후 기업 후원 물꼬… 비로소 안도
"요즘 직업란에 '체육인' 써요"
"폐막식 호돌이 깜짝 등장은 내 아이디어
연설문 직접 작성… 10번 넘게 고쳐 썼죠"
내가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제목이 '3000억 적자'
허리띠 졸라매 예산 절감… 이젠 흑자라 웃을 수 있어
날씨도 하늘이 도와… 조직위 사람들 기도 통했나봐요
막상 끝나니 시원섭섭해 아침에 눈뜨니 눈물 나더라
[ 최진석 기자 ]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은 여러 직업을 거쳤다. 공무원으로 시작해 경제단체장, 대학 총장, 기업인 등을 두루 지냈다. 그는 요즘 비행기를 탈 때 직업란에 ‘체육인’이라고 적는다. 평창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통해 손꼽히는 체육인이 된 이 위원장을 26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올림픽조직위원회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역할”이라며 “처음에 거절했지만 맡기로 결정한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온갖 악재로 뒤덮인 가시밭길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달려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스포츠 전문가가 아닌데 어떻게 조직위원장을 맡게 됐는가.
“스포츠 분야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평창조직위 위원장이라는 자리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당시 LG그룹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직의 필요성을 느낄 수도 없었다. 지금도 나는 조직위에서 주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판공비도 건드리지 않는다. LG상사 고문이기에 매월 월급을 받는다.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부탁해본 적이 없다. 평창조직위 위원장직도 국무조정실을 통해 받았고,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했다. 하지만 다음날 임명됐다는 발표가 나갔다. 어떤 과정을 거쳐 나로 정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왜 거절하지 않았나.
“정부가 발표한 상황에서 이를 뒤집는 건 쉽지 않았다. 이전에 산업자원부 장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위원장도 모두 고사했지만 결국 일을 맡게 됐다. 광주의 경우 유치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는데 다음날 광주 지역 신문 1면에 ‘경상도 출신이 광주 대회 유치위원장을 맡았다’는 기사가 크게 났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못한다고 거절하겠나. 일생을 불려 다니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여론은 냉담했다.
“부임 후 그해 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조직위 전체가 흔들렸다. 평창올림픽이 음모의 대상이었던 것은 맞다. 개·폐회식장과 같은 큰 규모의 사업은 한 번 수주하면 수백억원 규모니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비리의 온상은 아니었다. 당시 여론에서 제기되는 의혹에 몇 번을 해명해도 먹혀들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 사표를 낼까. 아니면 내일 낼까’ 고민했다. 어쩔 수 없이 더 이상의 대응보다 묵묵하게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우려가 컸을 것 같다.
“스포츠 경력이 없는 이희범이 왔다고 하니 IOC도 의구심을 가졌다. 2016년 5월16일 공식 부임한 날 별다른 취임식 없이 서울에서 조직위 간부들과 상견례를 했다. 다음날 평창으로 넘어왔고 그 다음날 강릉 현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다음날 구닐라 린드베리 IOC 조정위원장이 한국을 찾았다. 내가 광주 대회 준비 때 인연을 맺었던 폴 디스테파노 실사단장과 린드베리 조정위원장이 친한 사이였다. 린드베리가 디스테파노에게 이희범에 대해 물었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믿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린드베리가 한국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간담회에 참석, 외신 기자들이 제기한 이희범 위원장 자격 논란에 대해 ‘나는 그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스포츠 비전문가 이야기가 잦아들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
“조직위원장 부임 몇 주 뒤에 스위스 로잔에서 바흐 IOC 위원장과 처음 만났다. 린드베리의 말을 들은 바흐는 처음 만난 날 ‘저녁을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알고 보니 바흐 위원장은 소문난 ‘짠돌이’였다. 그런 그가 밥을 사겠다는 것은 좋은 징조라는 귀띔도 받았다. 바흐 역시 워커홀릭이었다. 그와 처음 만난 날 저녁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 이야기는 생략한 채 메모지를 펴놓고 ‘평창조직위의 요구 조건 10가지’를 읊었다. 그걸 다 들은 바흐가 웃더니 ‘역시 소문대로 정열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구 조건을 들어 줄 테니 두 가지를 약속하라고 했다. 첫 번째는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조직위원장을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는 평창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난 약속하겠노라고 말했다. 나중에 정말로 사직서를 내고 싶을 때 바흐 위원장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바흐 위원장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했고 이것이 IOC로부터 추가 지원금을 얻어내는 등 다양한 혜택을 받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대회 기간 내내 바흐는 나를 볼 때마다 ‘평창올림픽 성공시킨다고 나랑 약속했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바흐 위원장에게 어떤 것을 요구했는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요구했다. 가장 먼저 한국 사람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평창올림픽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메달 수도 98개에서 102개로 늘었다. 소치 때 88개국이 92개국으로 늘었다. 또 하나는 북한이 참가해야 성공 개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참가를 위해 IOC와 함께 노력하기 시작했다.”
▷가슴에 품었던 사직서를 언제 내려놓게 됐나.
“작년 올림픽 개막 200일을 앞두고 열린 ‘G200, 2018 평창을 준비하는 사람들’ 행사가 있었다. 당시 나는 새로운 대통령도 선출됐으니 여러 정황상 사직서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이희범 위원장을 중심으로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열심히 준비해달라’고 말씀하셨다. 또 ‘공기업들도 평창올림픽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이제 끝까지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은 “내가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제목이 ‘3000억원 적자’”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 2조8000억원의 운영 예산에 수입 2조5000억원으로 3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됐다. 이 위원장을 괴롭혔던 5적(5敵·최순실 게이트, 3000억원 적자, 티켓 판매 부진, 날씨, 노로바이러스) 중 하나였다. 그는 “적자 올림픽은 실패한 올림픽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며 “기업 후원금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지원금을 더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민간 기부금을 받으려고 동분서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직위 예산 집행을 일일이 확인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결과 운영 예산을 1000억원 절감했고 흑자 올림픽을 달성했다. 이 위원장은 흑자 달성과 함께 대회 운영 곳곳을 꼼꼼하게 챙겼다. 그는 “개·폐회식 연설문을 직접 작성했고 10번 이상 고쳐 썼을 것”이라며 “폐회식에 등장한 호돌이는 내 제안이었다. 송승환 총감독이 ‘좋은 아이디어’라며 채택했는데 이슈가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3000억원 적자를 어떻게 흑자로 돌렸나.
“삼성 등 후원 기업들은 이미 약속한 대금을 지급했기에 더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공기업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이후 공기업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공기업 후원을 받기 위해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경영평가에 사회공헌 항목(5점)을 넣었고, 국회를 찾아가 여야 만장일치로 공기업 후원 관련 결의를 이끌어냈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던 공기업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올림픽 성공 개최 지지 발언 이후 해빙 모드로 돌아섰다. 공기업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기업 후원금 목표액(9400억원)을 118% 초과달성(1조1123억원) 할 수 있었다.”
▷공기업 중 한국전력이 가장 먼저 나섰다.
“조환익 한전 사장이 많은 도움을 줬다. 다른 공기업이 망설일 때 가장 먼저 조직위에 손을 내밀었다. 조 사장은 내가 산업자원부 장관을 할 때 차관을 지냈다. 공무원 시절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에 같이 살아서 자주 만났고 목욕탕 친구이기도 했다. 평창올림픽 성공에 큰 힘이 됐다.”
▷평창올림픽 성공은 언제 예감했나.
“작년 말 기업 후원금이 목표치를 웃돌면서 흑자가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 힘들었던 것이 티켓 판매였다. 특히 개회식 티켓이 1주일을 남기고 3350장이 남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조직위가 모두 나서서 티켓 완판 작전을 벌였다. 나 역시 지방자치단체장과 재계 인맥을 총동원해 티켓을 팔았다. 모두가 적극 나선 끝에 티켓을 완판했다. 이후 개회식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대회 흥행이 탄력을 받았다.”
▷개회식 날씨는 그동안의 강추위 우려를 걷어냈다.
“추위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개막식 전날 영하 18도였는데 개막식 당일 영상 4도까지 올라갔다. 바람도 잦아들었다. 폐회식에서도 바람이 적게 불어 드론쇼를 할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조직위 사람들에게 ‘각자 믿는 종교에 가서 날씨 좋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성공적인 개최를 염원하는 온 국민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고 본다.”
▷대회 초반 노로바이러스는 큰 위기였다.
“확진 판정 소식을 접한 그날 밤 10시에 긴급회의를 소집해 2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900여 명의 보안인력을 모두 격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군부대를 투입했다. 보안업체에는 약속한 대금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회복에 전념하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바흐 위원장에게 조치 내용을 보고했고, 완벽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난 25일부로 노로바이러스 환자 수가 제로(0)가 됐다.”
▷북한 참가가 흥행에 도움을 줬다.
“북한 리스크로 인해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대회 장소를 바꾸자는 의견도 나왔고 불참 움직임도 있었다. IOC와 함께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결국 참가로 이어졌다. 북한 선수와 응원단의 안전에 특히 신경 썼다. 보안 인력과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 모두 성공적으로 경기를 마친 뒤 돌아갔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문제도 작년부터 세계하키연맹과 계속 협의했다.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해 만족한다.”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치니 어떤가.
“매일이 고통스러웠다. 고문받는 것 같았다. 새벽에 눈 뜨면 날씨는 어떤지, 다친 선수는 어떤지, 노로바이러스는 잡혔는지 확인했다. 새벽 1시 넘어서 방에 들어왔고 오전 6시면 일어났다. 막상 끝나니 시원섭섭하고 오늘 아침에는 눈물도 났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패럴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평창=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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