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풀이
後 뒤 후
生 날 생
可 옳을 가
畏 두려워할 외
“뒤에 난 사람이 두렵다(後生可畏). 나중에 올 사람이 어찌 지금 사람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이 40이나 50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리 두려워할 게 못 된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후생(後生)은 뒤에 태어난 사람이다. 외(畏)는 단순히 두려운 게 아니라 존경의 뜻을 내포한다. 경외(敬畏)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 후생가외는 뒤에 오는 자의 뛰어남을 두려워하고 시기만 하는 게 아니다. 두렵지만 존중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뒤에 난 사람을 경계해 스스로 더 정진하는 것이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35년을 뛰어넘은 망년지우(忘年之友)다. 서원으로 찾아온 이이가 돌아간 뒤 이황은 제자 조목에게 편지를 보냈다. “율곡이 찾아왔다네.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울 뿐 아니라 견문도 넓고 우리 쪽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배가 두렵다(後生可畏)’고 한 공자의 말씀이 참으로 옳지 않은가.” 율곡의 학문보다 퇴계의 그릇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릇이 큰 데는 다 까닭이 있다.
후생가외보다 귀에 더 익은 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맹자의 성선설에 맞서 순자는 성악설을 주창했다. 둘은 유가이면서 생각의 색깔은 다소 달랐다. 《순자》 권학편은 선(善)의 회복에 배움이 왜 중요한지를 상세히 적고 있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청출어람의 출처가 된 구절이다.
인생은 미지수(未知數)다. 크고 작은 미지수가 삶을 설레게도, 두렵게도 한다. 세상의 위치는 고정돼 있지 않다. 당신이 당신 걸음으로 걸어도 따라오던 누군가의 걸음이 잽싸면 순식간에 당신을 앞지른다. 당신도 독하게 마음먹으면 앞사람을 제칠 수 있다. 아무리 걸음이 빨라도 걷지 않으면 느릿느릿 걷는 자에게마저 뒤지는 게 세상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