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성 관광객 살해사건, 게스트하우스 실태 어떻길래
제주 '무개념 게하' 우후죽순
초기엔 저렴·깔끔한 숙식 인기
2~3년 새 불법으로 술 파는 클럽형 늘며 지역주민과 마찰
느슨한 관리, 무법지대로
당국, 불법영업 알고도 묵인
성범죄·폭행 등 신고 접수된 제주 게스트하우스만 171곳
전국 몇 곳인지 파악도 못해
"별도의 숙박 형태 분류하고 지자체가 운영상태 관리해야
한 철 장사 노리는 업주 퇴출"
[ 성수영 기자 ]
제주도에 살고 있는 오모씨(48)가 2008년 서귀포에서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는 깔끔한 시설과 맛있는 아침식사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주변에 비슷한 게스트하우스가 조금씩 늘어났지만 대부분 금도를 넘지 않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2~3년 전부터 시끄럽게 음악을 틀고 술을 불법 판매하는 ‘클럽형 게스트하우스’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오씨 영업에도 적잖은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오씨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손님들이 “왜 여기서는 술을 팔지 않느냐”며 진상을 부리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는 손님도 부쩍 늘었다. 참다못한 오씨는 뜻을 함께하는 일부 게스트하우스들과 자정운동까지 벌였지만 외지인 출신 게스트하우스들은 들은 척 만 척 했다. 오씨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생태계가 완전히 엉망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엉망이 된 게스트하우스 생태계
지난 8일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사진)에서 여성 관광객을 살해하고 도주한 한정민이 공개수배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자 업계 관계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스트하우스 산업이 지난 10년간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노출됐지만 이를 방치한 정부 당국에 책임이 적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스트하우스는 해외에서 도입된 숙박 형태다. 외국인 여행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주택이나 빈방을 활용하는 도시민박에서 출발했다. 영국 등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호텔 모텔 등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숙박 업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게스트하우스는 ‘나홀로 여행’이 2030세대 젊은 층의 여행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2000년대 후반 제주도 도보 여행로인 ‘올레길’이 기폭제가 됐다고 말한다. 올레길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게스트하우스들이 제주도 곳곳에 생겨나면서 일종의 트렌드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이후 게스트하우스 문화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국내 여행은 짧은 시간을 이용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지만 지역 특색을 살린 관광자원이나 콘텐츠가 미비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틈을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내세운 게스트하우스가 비집고 들어왔다. 펜션 모텔 등 기존 숙박시설보다 저렴하다는 점도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층에 어필했다. 2011년 코레일이 도입한 1주일 무제한 철도티켓 ‘내일로패스’의 인기도 한몫했다. 자연스레 20대 미혼 남녀들이 게스트하우스로 몰렸다.
숫자도 파악하지 못해…‘무법지대’로
느슨한 관리를 틈타 일부 게스트하우스들은 무법지대로 전락했다. 음식점 등록 없이 음식과 술을 판매하는 가벼운 탈법은 기본이었다.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무분별하게 게스트하우스를 세우고 최소한의 검증 없이 종업원을 고용하는 업주들도 생겨났다. 2015년 서울 명동의 게스트하우스 종업원은 술에 취한 투숙객의 방을 마스터키로 열어 성폭행을 시도했고, 지난해 8월 경북 안동에서는 게스트하우스 관리인이 객실 내 욕실 천장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성범죄·폭행 등으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제주 게스트하우스는 171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정관청은 불법 숙박업을 알고도 묵인했다. 작년 10월 제주도 감사위원회 감사 결과 제주도 행정관청이 신고 없이 불법 영업을 한 숙박업소 398개 동을 적발하고도 아무런 행정처분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위는 “농어촌민박이 제도상 허점을 이용해 편법 운영되고 있으나 행정 당국이 지도·감독을 소홀히 해 사업 취지가 크게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전국 게스트하우스가 몇 개인지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없다. 현행법상 게스트하우스라는 업(業)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일반적으로 게스트하우스라는 간판을 내건 대부분의 숙박업소는 공중위생관리법상 숙박업과 관광진흥법상 호스텔업, 농어촌정비법상 농어촌민박사업 중 하나로 신고해 영업하고 있다. 이 중 대다수 게스트하우스는 ‘농어촌민박’을 선택한다. 규제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법적 기준 마련해 제도화해야
농어촌민박사업은 농어촌지역에 거주하는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을 이용해 농어촌 소득을 늘릴 목적으로 투숙객에게 숙박과 취사시설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숙박업은 공중위생관리법과 소방안전법상 위생·소방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농어촌민박사업은 이를 피해갈 수 있다. 특히 제주도는 제주 시내 일부 지역이 농어촌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도심지에서도 농어촌민박사업을 통한 게스트하우스 운영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게스트하우스를 ‘호텔’이나 ‘여관’처럼 별도의 숙박 개념으로 정하고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운영상태를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흥욱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장은 “불법 게스트하우스 문제가 불거지면 관광산업 전반에 부적정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게스트하우스를 별도의 숙박시설로 분류해 법적 기준 및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서비스 규정, 등급제 시행 등의 제도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게스트하우스의 자정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 강릉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황모씨(35)는 “블로그 후기 조작 등으로 일단 손님을 끌어모아 한철 장사만 하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며 “이번 사건이 자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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