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보다 더 우울한 EIU 전망
인공지능 실기 땐 성장률 급추락
'좌충우돌 경제전략' 정비해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대 이후에는 연평균 1%대로 떨어질 걸로 내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지난해 3.2%를 정점으로 올해(3.0%)부터 2022년(2.6%)까지 매년 0.1%포인트씩 낮아질 거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게 맞는다면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성장률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물론 IMF는 그 이유를 적시했다. 서비스 생산성 저하, 노동시장 왜곡, 급속한 고령화 등이다. 특별히 새롭다고 할 건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튀어나온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외치는 4차 산업혁명은 성장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말인가.”
이 의문을 풀어주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기계학습의 경제적 영향에 관한 시나리오(2018)》에서 인공지능(AI)이 분석 대상국의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시나리오별로 분류했다. ① AI와의 보완성을 위한 교육·훈련 등 생산성 제고, 인적자본 고도화 등으로 가는 경우, ② 혁신을 위한 자본투자를 늘리고 데이터 규제를 푸는 경우, ③ 앞의 ①과 ② 모두에서 ‘정책 실패’가 일어나는 경우다.
EIU는 2016~2030년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 기준치를 1.78%로 추정한 다음, 성장률이 시나리오 ① 2.07%, ② 3.0%, 그리고 ③ 0.02%로 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두 번째 시나리오를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혁신성장을 하자는 거 아니냐”면서. 과거 개발연대식 기획이 몸에 밴 기획재정부가 혁신성장을 주도하는 난센스는 그렇다고 치자. 혁신의 확산은 고사하고 투자의 벽조차 넘지 못하는 신기술 분야가 수두룩하다.
데이터 규제만 해도 그렇다. 명색이 4차산업혁명위원회라면 데이터 개방,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를 외쳐도 시원찮을 판에 시민단체가 무서운지 ‘유럽식 규제’ 운운하고 있다. 데이터산업에서 미국에 패배를 당하는 유럽이 왜 한국의 모델이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대기업이라면 비판부터 하는 시민단체가 데이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출현을 막는 규제를 옹호하는 것도 자기모순이다.
한국은 첫 번째 시나리오로부터도 멀어지고 있다. 당장의 일자리 중심, 인위적인 소득격차 축소를 내건 소득주도성장이 새로운 인적자본 축적을 위한 교육·훈련 투자를 뒷전으로 밀어내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남겨진 건 세 번째 시나리오, 사실상 ‘제로성장’뿐이다.
이코노믹스 오브 이노베이션 앤드 뉴 테크놀로지(Economics of Innovation and New Technology) 저널 최신호는 ‘경제성장에서 혁신과 불평등의 영향’이란 논문을 소개하고 있다. 《진화 게임과 빈곤의 함정》으로 유명한 에드가 J 산체스 카레라 등 논문 저자들은 “혁신투자는 ‘기득권의 저항’이란 문턱을 넘어야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소득 불평등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득권의 저항이 심한 한국을 생각하면 금방 수긍이 간다.
기존 일자리를 사수하자며 혁신을 반대하고 연구개발·인적자본 투자 등을 미루면 국가가 ‘빈곤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발견도 의미심장하다. 혁신을 통한 좋은 ‘미래 일자리’보다 위협받는 ‘현재 일자리’에 집착하는 문재인 정부는 새겨들을 만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일자리 중심’, ‘정체도 불분명한 소득주도성장’, ‘승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공정경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규제개혁 의지도 안 보이는 혁신성장’ 등은 제로성장만 앞당길 뿐이다. 좌충우돌식, 상호모순적 경제전략일랑 빨리 정비하는 게 좋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이라도 ‘혁신투자·인적자본 주도 경제’로 가면 기회는 있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