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주행'과 아름다운 꼴찌

입력 2018-02-22 17:33
수정 2018-02-23 07:22
평창올림픽

현장에서

팀워크 깨진 한국여자 팀추월
빙상계 적폐청산 '비난의 화살'

한데 뭉친 남자 아이스하키팀
'꼴찌 투혼'으로 기립박수받아

최진석 레저스포츠산업부 기자


[ 최진석 기자 ] “와, 아무도 박수를 안 치네. 조용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 경기가 열린 지난 21일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 대표팀의 김보름(24·강원도청), 박지우(19·한국체대)를 소개할 때 좌석을 가득 메운 관중석이 순간 침묵하자 경기를 취재하던 미디어석에서 나온 말이다. 마지막으로 노선영(29·콜핑)을 소개할 때는 열띤 응원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들이 7~8위전에서 주행할 때도 관중은 노선영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 경기는 노선영의 올림픽 마지막 주행이었다. 8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들은 표정 변화 없이 짐을 챙긴 뒤 퇴장했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의 인터뷰도 사양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은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모두 최하위인 8위를 기록했다. 이번에도 8위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바로 옆 강릉하키센터의 분위기와도 달랐다. 팀 추월 경기 하루 전인 20일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이곳에서 열린 마지막 핀란드전에서 2-5로 졌다. 4전 전패로 12개 팀 중 최하위였다. 하지만 경기 종료 부저가 울렸을 때 관중은 기립박수를 쳤다. 참았던 눈물을 흘린 백지선 감독(51·영어명 짐 팩)을 보며 함께 훌쩍이는 관중도 있었다. 백 감독은 “세계 강호들과 맞서 멋지게 싸운 대표팀이 자랑스럽다.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취임 직후 오직 실력으로만 대표팀을 선발했다. 그 결과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아이스하키 월드챔피언십(1부리그)에 진입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이뤘다. 백 감독의 책임감도 남달랐다. 17일 스위스에 0-8로 대패했을 때 그는 공동취재구역으로 나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선수들을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선수들은 이런 감독 아래서 하나로 뭉쳤다.

스포츠 선수에게 ‘올림피언’은 영광스러운 수식어다. 아이스하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백 감독도 “우린 올림픽 출전 선수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일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메달보다 귀한 명예에 흠집을 냈다. 빙상연맹의 행정 착오로 노선영의 올림픽 출전이 불발될 뻔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점은 ‘왕따 주행’으로 확산됐다.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22일 오후 3시 현재 56만 명을 넘어섰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은 동계올림픽의 효자종목이다. 하계올림픽의 양궁과 비슷하다. 파벌 싸움과 특혜 의혹에 빛바랜 빙상장과 ‘특혜가 아니라 경쟁, 메달보다 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양궁협회의 대표팀 선발 과정이 겹쳐진다.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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