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학부모 반발에도 학교·당국이 '학종'을 놓지 못하는 이유

입력 2018-02-21 16:00
수정 2018-02-22 07:47
[김봉구의 교육라운지]

'공교육 정상화'와 '성적순 선발 극복' 가치의 결합
중심 잡으면서 본질적 문제까지 검토해 재설계해야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대입 관련 기사에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이 ‘수시 축소, 정시 확대’ 요구다. 수시전형 불신에는 학종의 지분이 상당하다. 깜깜이, 나아가 금수저 전형인 학종을 못 믿겠으니 차라리 수능 성적순인 정시전형으로 뽑자는 것이다.

학생·학부모 대상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조사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종에 대한 높은 불만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복잡(깜깜이)할 뿐 아니라 불공정(금수저)하다는 이유다. 반면 이해관계자의 다른 한 축인 고교 진학교사와 대학 입학처장들 입장은 결이 다르다. 학종의 맹점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수정·보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다.

실제로 이들을 만나 학종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면 대부분 학종의 장점에 주목한다. 여러 말들을 간략히 정리하면 “학종이 토론식 수업 등 고교 교실을 바꾼 측면이 있”으며 “대학 역시 성적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잠재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종에 대한 학생·학부모와 고교·대학 사이의 ‘간극’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아마도 ‘공교육 정상화’라는 철학과 ‘성적순 선발 극복’이라는 담론의 결합 때문일 것이다.

관련 취재를 하면서 인상 깊게 들은 말이 있다. 고교 교사들은 이렇게 짚었다. “그나마 학종 덕분에 뭐라도 해볼 여지가 생겼다.” 갈수록 학교 수업시간에는 자거나 딴 짓하며 사교육에만 의존하던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교사의 평가권(학생부 기재)이 입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학종의 속성 덕분이다. 물론 여기에는 종전 수능 위주 수업에서의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탈피해 다른 방식의 수업을 시도할 여지가 생겼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학종 비판에 대한 대학 입학처장들 의견도 한결 같았다. “실은 성적순으로 커트라인 넘긴 학생들 뽑는 예전 방식이 편하다.” 더러 “학종은 품이 많이 드는 전형”이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을 찍곤 했다. ‘성적순 선발≠창의적 인재’라는 관념이 대학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서울대가 신입생의 약 80%를 학종으로 뽑는 이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교육 당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학종이 고교와 대학간 ‘연계’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는 인식이 주를 이룬다. 최근 들어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몇몇 학생부 기재항목을 줄여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긴 했다. 다만 큰 틀에선 학종 선호 경향이 이어진다는 평가다.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들 반발에도 학종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반복해 말하자면 공교육 정상화와 성적순 선발 극복의 ‘결합’으로서 학종은 고교·대학 양측이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지녔다. 때문에 이들은 학종의 근간이 유지돼야 한다는 쪽에 섰고, 당국도 이런 결론을 수용한 셈이다.

발본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각각 측정하려는 척도의 성격만 놓고 보면 학종은 타당성, 수능은 신뢰성이 높은 전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타당성은 과녁 가운데를 잘 조준했는지를, 신뢰성은 탄착군이 조밀하게 형성됐는지를 의미한다. 다시 입시 용어로 변환하면 타당성은 적합성, 신뢰성은 공정성 정도가 될 터이다. 즉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 적합하게 뽑았는지, 그리고 당락에 이의제기하지 않을 만큼 공정하게 선발했는지의 문제가 된다.

당국은 여기서부터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 우선 학종과 수능이 각각 적합성과 공정성의 원칙에 맞게 운영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 순서는 공교육 정상화와 성적순 선발 극복이란 학종의 지향점이 선발의 적합성 원칙을 충실히 따랐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저 학종이 문제라 하니 몇몇 항목을 간소화하는 대증(對症) 요법으로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교육부는 올 8월까지 새 대입제도 개편안을 확정한다. 이달 말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대입정책포럼을 운영해 시안을 마련, 다음달엔 국가교육회의에 넘길 방침이다. 새 대입제도 윤곽이 드러난 뒤 채 반년도 안 되는 시한이 남는다. 게다가 반환점에 6·13 지방선거가 있다. 교육정책에 대한 여론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중심을 잡으면서 본질적 문제까지 검토해 대입제도를 재설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교육부에게 주어졌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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