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폭탄돌리기… 청와대, 칼잡이가 돼라

입력 2018-02-18 19:47
현장에서

2대주주 산업은행, 금융위만 보고
금융위는 "산업부가 주무부처"
산업부 "…" 기재부 "부처 조율"
1주일간 책임 떠넘기다 '뒤통수'

'청와대 서별관회의'라도 부활시켜
GM사태 조속히 결론내야

장창민 산업부 차장


[ 장창민 기자 ] A씨가 본지 기자에게 전화를 건 때는 이달 초였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와 한국GM, 산업은행, 정부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이었다. GM이 한국 정부와 산은에 한국GM에 대한 △3조원 안팎의 증자 참여 △대출 재개 △세금 감면 등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지역경제와 국내 자동차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낳을 수 있는 사실을 털어놓은 이유는 정부 때문이라고 했다. GM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마당에 정작 우리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산은 모두 총대를 메지 않고 눈치만 본다며 개탄했다. 나중에 군산공장 폐쇄 발표로 현실화된 한국GM 사태를 하루빨리 수면 위로 끌어올려달라는 것이 그의 요청이었다.

처음 이 문제가 한국경제신문 보도(2월8일자 A1, 3면)를 통해 나오자, 정부의 반응은 A씨가 걱정한 대로였다. GM이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식으로 발뺌하기에 바빴다.

더 황당한 건 보도 다음날인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GM의 요구가 공개된 직후였다. 한국GM 2대 주주이자 ‘돈줄’을 쥔 산은은 금융위만 쳐다보고 있었다. 금융위는 “산업부가 주무부처”라며 뒤로 빠졌다. 하지만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라는 산업부도 꿀먹은 벙어리였다. 회생 방안이나 구조조정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기재부는 “부처 조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러는 사이 GM은 지난 13일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했다. 정부는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노했지만 당초 GM과 어떤 신뢰를 쌓아왔는지도 의문이다. 설 연휴 직전까지 불과 1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GM 사태에 대한 해법을 놓고 시선은 엇갈린다.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정부의 조건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더 붓기엔 늦었다는 냉소도 적지 않다.

기업 구조조정에 정답은 없다. 분명한 건 누군가 칼을 쥐고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한다는 점이다. 산은이 GM의 요구대로 돈을 넣으면 20만~30만 개 일자리를 당분간 지킬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국민의 세금을 들여야 한다. 반대로 요구를 거부하면 GM은 한국 시장에서 짐을 쌀 가능성이 높다. 한국GM과 협력업체 직원들의 일자리가 송두리째 흔들릴 게 분명하다.

관건은 청와대다. 누가 어떻게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지에 대한 종합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정부부처 단위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밀실 논의’라고 비난한 ‘청와대 서별관회의’라도 부활시켜야 한다. 이제 와서 ‘칼잡이 이헌재(외환위기 시절 금융감독위원장)’나 ‘대책반장 김석동(전 금융위원장)’을 다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책(策)이라는 것도 따로 있을 수 없다. 이해관계자들의 고통 분담과 출혈을 설득할 용기를 내야 한다. 한국GM을 법정관리에 넣는 방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 청와대가 강단 있게 나서야 GM과의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지금 같은 자세와 포진으로는 GM을 상대할 수 없다. 그들도 마냥 한국 시장만 쳐다볼 수는 없는 여건이다.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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