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시리아 내전, 열강들 각축전으로… '아랍의 봄'은 언제쯤

입력 2018-02-18 19:38
수정 2018-05-19 00:00
엉켜진 전선… 적도 동지도 없다
2011년 민주화시위로 내전 시작
러시아·이란, 시리아 정부군 도와
미국, 반군 지원… 터키는 북부 진출

이란 vs 이스라엘 갈등까지
이스라엘, F-16기 격추 당하자
시리아에 즉각 미사일 보복공격
"배후세력 이란, 대가 치를 것"

무정부 상태로 전락하나
열강 대리전서 직접 전쟁 나서
평화협상 없이는 내전 지속 우려


[ 박상익 기자 ]
지난 10일 이스라엘 F-16 전투기 한 대가 시리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이스라엘 북부에 추락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작전을 펼치던 이스라엘 전투기가 격추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아랍 하늘에서 경쟁자가 없다고 자신하던 이스라엘이 군사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시리아 내 군사기지에 미사일 수십 발을 쏘며 보복에 나섰다. 그동안 시리아 내전에 대해 언급을 꺼린 이스라엘이 공격 사실을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시리아군을 지원하는) 이란이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는 모험으로 지역을 몰아넣고 있다”며 “책임자가 누구이든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재 정권에 저항해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이제 국제전으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리아 내전을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갈등의 가장 극렬한 사례로 보고 있다. 시리아에서 주도권을 잡는 쪽이 향후 중동 세력 구도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 이란의 영향력 확대와 이를 막으려는 이스라엘 등 다국적 갈등 요소가 시리아 내전에 모두 들어가 있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유가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주화 대신 외세 난무하는 시리아

시리아는 시아파와 소수 기독교 세력이 정권을 잡고 인구의 70%인 수니파를 지배하고 있었다. 2011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아랍의 봄’으로 일어난 민주화 요구를 유혈 진압하자 그동안 쌓여온 종파 간 갈등이 내전으로 번졌다. 여기에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세력을 키우면서 시리아는 IS와의 전쟁까지 치르는 처지가 됐다. 단순한 정부-반(反)정부 전투였던 시리아 내전이 점점 복잡해진 이유다.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들은 시아파 정부에 대항한다는 점은 같지만 반군 안에서도 종교적 성향 차이 때문에 상호 적대적이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세속주의 성향을 지닌 민주주의 반군의 입지는 점차 줄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반군 내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쿠르드는 자치국가 수립이라는 숙원을 위해 IS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알아사드 독재를 비난하던 국제사회는 세력을 키운 IS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격퇴전에 돌입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이란, 터키 등이 IS를 몰아내기 위해 시리아에 개입했다. 지난한 싸움 끝에 IS는 사실상 궤멸 상태에 몰렸다. 그러나 IS 격퇴를 빌미로 모인 국가들은 시리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이스라엘 갈등으로 확산

전문가들은 시리아 내전 양상이 ‘대리전’에서 ‘직접전’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전까지는 각국이 시리아 정부군 또는 반군에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해당 국가들의 직접적인 군사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 시리아 민주군(SDF), IS, 쿠르드족 등 4개 세력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다. 인접 국가는 물론 미국, 러시아까지 시리아 내 각기 다른 세력을 후원하며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이란은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알아사드 정권 유지가 자국 안보에 중요하다. 이 때문에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에 적지 않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러시아도 냉전 시절부터 시리아 항구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등 알아사드 정권과 우호관계를 지속해왔다. 서방이 시리아 국가 재건을 주도하면 러시아산 무기 수입국 한 곳이 사라지는 셈이다. 러시아는 리비아에 이어 시리아까지 무너지면 중동의 최대 우방인 이란 안보까지 보장할 수 없어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오랜 앙숙인 이란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시리아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이란이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키우면 미국이 구상하는 중동 안정을 흔들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이 때문에 미국은 IS를 몰아내는 한편 알아사드 정권에 저항하는 시리아 반군에 각종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지역 수니파 국가도 알아사드 정권 붕괴를 위해 반군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란을 비롯해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등이 이스라엘엔 안보의 불안 요소다. 그 불안감이 극대화된 사례가 이번 이스라엘 F-16 전투기가 격추된 사건이다. 이란도 미국의 시리아 주둔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혀 시리아 내전이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의 무력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소말리아 전철 밟나

전문가들은 시리아 내전 성격이 ‘알아사드 정권과 반정부 세력의 내전’에서 ‘이란 시아파 패권주의와 반대 세력 간 대립’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임스 겔빈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최근 2년 동안 영토를 많이 수복했지만 이는 이란군과 헤즈볼라의 지원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알아사드 정권은 이란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미국 터키와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 조직을 계속 지원하고 있어 내전 종식은 쉽지 않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당분간 소모적인 싸움을 지속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분쟁이 계속 이어지면 시리아가 만성적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엔과 아랍연맹의 시리아 담당 특사로 활동한 라크다르 브라히미는 “평화협상이 성공하지 못하면 시리아 내전은 시리아의 소말리아화(化)로 귀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겔빈 교수도 “시리아에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정부가 생기더라도 그 정부는 소말리아 사례처럼 전 영토를 통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