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의 데스크 시각] 선으로 위장한 '약자착취 정책'

입력 2018-02-18 18:39
백광엽 지식사회부장


문재인 대통령을 지배하는 코드는 낭만인 듯하다. 그의 언어는 낭만과 이상으로 넘실댄다. 연설에서도 연민 배려 등의 감성적 단어가 두드러진다. 후보시절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 중심 경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알쏭달쏭하던 그 슬로건은 ‘약자를 우선하는 정의로운 경제’로 의미가 분명해졌다.

취임 10개월의 정책을 꼽아봐도 낭만이 가득하다. 비정규직 100%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학 상식에 배치되는 과감한 조치들에선 문 대통령의 더운 심장이 꿈틀대고 있다.

걱정스러운 점은 문 대통령의 낭만적 세계관과 현실 간의 간극이다. 탁현민과 신동호 비서관의 탁월한 마사지를 거쳐도 낭만에 경도된 본질적 한계는 어찌할 수 없다. 복고 취향의 386식 처방과 시대와의 부조화도 달라지지 않는다. 약자 보호를 위해 밀어붙인 ‘문재인표 정책’이 쓰나미처럼 약자를 덮치는 데서 모순은 적나라해진다.

약자들을 저격하고 만 '낭만 과잉'

지난 1월 한 달 동안 일자리를 잃은 취약계층이 7만5000명에 달했다. 최저임금이 급등한 탓에 연초부터 비숙련 근로자들이 해고의 칼바람을 맞은 것이다.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도 취업시장을 더 좁은 문으로 만들었다. 결국 사회적 약자인 실업자, 구직자 등이 최대 피해자가 됐다.

선(善)으로 포장된 낭만 정책의 공습은 전방위적이다. 3년간 불허된 ‘성남시 무상교복’도 최근 정부 인가가 났다. 교육격차 해소가 절박한 저소득층에 더 돌아가야 할 소중한 재원에 대한 약탈 혐의가 짙다. 치료비 지원을 대폭 늘린 ‘문재인 케어’는 후세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세대 착취’의 길로 들어섰다. 7년 연속 흑자를 낸 건강보험재정은 보장이 확대되자마자 올해부터 적자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냉철한 전략이 요구되는 북핵 해법마저 ‘민족’이라는 낭만 코드에 포섭되고 있다. 자유 인권 등 인류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접근은 실종 상태다. ‘우리민족끼리’식의 감상적 논의만 넘친다.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란 낭만적 무지가 동맹과의 갈등을 자초하는 국면이다. 김정은의 폭압적 지배를 강화시켜주는 방식이라면 남북 정상회담도 북한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착취일 뿐이다.

대중 아닌 역사를 사로잡아야

낭만 과잉이 정치와 결합할 때 최악의 재앙이 초래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전제적 체제는 언제나 낭만적 이상과 동행했다. 프랑스혁명기의 공포정치가 로베스피에르는 ‘빈부격차 없는 평등사회’를 만들겠다며 ‘덕목 정치’를 부르짖었다. 파시즘과 나치즘도 들뜬 낭만에서 출발한 열정이 광기로 진화해 빚어진 비극이다.

현실과 괴리된 낭만도 대중을 잠시 사로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역사는 사로잡지 못한다. 베네수엘라의 추락이 입증하고 있다. ‘민중의 대변자’ 차베스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최저임금 급등을 밀어붙였다. 반미 선봉에 서서 호기롭게 큰소리도 쳤다. 일시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과는 파국이었다. 연 1만3000%의 살인적 인플레이션 예상에 대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낭만가도를 달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절이 반면교사다. 그는 누구보다 약자를 챙겼지만 양극화를 가장 심화시킨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처음으로 세계 평균을 밑도는 굴욕도 겪었다. 문재인표 낭만 정책은 다를 것이란 기대는 낙관편향적 모험주의일 뿐이다. 낭만을 가장한 위선이 아니라면 이쯤해서 회군해야 한다.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