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유동성 '구조변화' 불확실
주가 상승률 둔화… 변동성 커질 듯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10년 만에 반갑지 않은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 용어가 재등장하면서 세계와 한국 증시를 뒤흔들고 있다. 이달 들어 인플레 우려가 확산되면서 각국 국채금리가 급등하자 증시가 변동성이 심한 장세, 즉 워블링 마켓(wobbling market)에 접어들었다. 막 걷기 시작하는 아기가 넘어지지 않으면 주가가 재상승하고, 넘어진다면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증시가 인플레 우려에 민감한 것은 올해 세계 경제가 10년 만에 ‘디플레 갭’에서 ‘인플레 갭’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전자는 실제 성장률에서 잠재 성장률을 뺀 것이 ‘마이너스’일 때, 후자는 ‘플러스’일 때를 말한다. 전자 국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즉 리플레이션은 증시에 호재가 되지만 후자 국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은 악재로 작용한다.
절대오차(전망치-실적치)로 평가한 전망기관별 예측력이 가장 높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예상치는 3.9%다. 세계 경제 잠재 성장률은 3.6% 내외로 GDP 갭을 구하면 +0.3%포인트로 나온다. 10년 만에 디플레 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플레 우려는 하방 경직성을 띤 재정 지출과 임금 상승에 기인해 증시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인플레 요인을 총공급(AS) 곡선과 총수요(AD) 곡선으로 설명하면 AD 곡선은 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에 의해 도출된다. AS 곡선은 노동시장과 생산함수에 의해 결정된다.
재정 지출이 증가하면 AD 곡선을 우측으로 이동시켜 성장률과 인플레가 동시에 높아진다. 하지만 임금 상승률이 높아지면 AS를 좌측으로 이동시켜 성장률 둔화 속에 물가가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들어간다. 두 요인이 겹치면 물가는 확실히 올라가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은 출구전략을 앞당길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 이후 자산 가격 상승과 경기 회복을 주도했던 저물가·저금리 양대 축이 흐트러지면 ‘애프터 쇼크’ 우려가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애프터 쇼크는 ‘위기 10년 주기설’과 맥을 같이한다. 한마디로 위기를 낳게 한 시스템이 해결되지 않으면 위기 발생 10년 차에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올해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이달 들어 세계 주가가 주춤거리자 곧바로 ‘폭락설’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와 기업 실적 등과 같은 증시 기초여건(fundamentals)이 건전한 점을 근거로 조만간 주가가 재상승 국면에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도 만만치 않다. ‘추가 폭락설’과 ‘재상승론’. 이 두 상반된 운명 가운데 설 이후 세계와 한국 증시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인플레와 출구전략, 애프터 쇼크 우려를 동시에 불식할 수 있는 지속 성장(증시 측면에서는 상승) 과제인 ‘양대 구조변화(both major paradigm shift)’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를 주도해 왔으나 이제는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갔느냐 하는 점이다. 특정국 경기가 민간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비와 설비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부(富)의 효과’보다 ‘임금’이 소비를 지탱해줘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각국의 일자리 창출 노력 등으로 양적 고용지표인 실업률은 속속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 등과 같은 지속 가능한 소비를 지탱할 수 있는 질적 고용지표 개선 추세는 여전히 미약하다. 기대가 높은 4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이 산업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돼 ‘고용창출 없는 성장’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앞으로 정책 요인에 의한 유동성 공급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여건에서 주가가 재상승하기 위해서는 채권에서 이탈한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GR)’이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GR’뿐만 아니라 증시에서 채권으로의 자금 이동을 뜻하는 ‘머니 무브(MM)’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노마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아직 인플레와 출구전략, 애프터 쇼크 우려를 해소하고 주가 재상승 기대를 확신할 수 있는 경기와 유동성 면에서의 양대 구조변화가 확실치 않다. 앞으로 주가가 오르더라도 투자자는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는 기저 효과 등으로 상승률이 둔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낙관론(상승)’과 ‘조정론(하락)’이 혼재한 만큼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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