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세브란스병원의 특별한 설날

입력 2018-02-14 16:44
1900년 4월30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국제선교대회가 열렸다. 의료선교사 올리버 R 에이비슨(1860~1956)은 “조선에 작은 진료소 몇 개가 있는데 큰 병원이 없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에이비슨은 1885년 ‘광혜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조선 최초의 병원 제중원 원장을 맡고 있었다.

이날 청중석에는 록펠러와 함께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한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1838~1913)가 있었다. 그는 환자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양식 병원을 짓는 데 1만달러가 든다는 말을 듣고 전액을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고종이 제공하기로 한 병원터 문제가 여러가지 이유로 꼬이자 5000달러를 추가로 기부했다. 그 돈으로 지금의 서울역 앞에 땅을 사 공사를 시작했다. 1904년 9월 40병상의 2층짜리 병원이 완공됐다. 선교사들은 후원자를 기념해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듬해 설날에는 의사와 환자들이 떡국을 나눠 먹으며 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3년 뒤 이곳을 방문한 그는 3만달러를 더 기부해 의과대학을 세우도록 했다. 이것이 지금의 연세대 의대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후원이 끊기지 않도록 영구기금까지 마련해놨다. 사후에 발견된 그의 수첩에는 수많은 기부약정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자기 이름의 집은 한 채도 없었다.

연세대학교는 1957년 연희대(옛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통합할 때 두 학교 이름의 앞글자를 하나씩 따 지은 교명이다. 연희전문 설립자는 선교사이자 교육자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다. 언더우드는 1885년 인천항으로 들어와 광혜원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치며 진료했고, 경신학교를 설립해 연희전문학교로 키웠다.

세브란스와 언더우드 등의 아낌없는 헌신 덕분에 한국 의료와 교육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제는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도 의료기술을 전파하는 수준이 됐다. 최근에는 영국 의료진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자국 선수의 골절 수술을 세브란스병원 의사에게 콕 집어 요청하기까지 했다.

메달 기대주였던 영국 선수는 내일 퇴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일은 설날이다. 93년 전 동서양 의료진과 환자들이 처음 맞은 세브란스병원의 설날 풍경은 어땠을까. 세브란스와 언더우드, 에이비슨이 모두 영국 출신 이민자라는 것도 묘한 공통점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