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시각 반영한 무대 잇따라
셰익스피어 원작 각색한
'5필리어' '줄리엣과 줄리엣' 창작극 '더 헬멧' 등 눈길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추진도
[ 마지혜 기자 ] 연극계가 ‘여성’을 재조명하고 있다. 여성을 극의 중심에 세우고 여성의 삶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작품들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연극인들이 젠더(사회적 의미가 부각된 性) 문제의식을 작품으로 빚어내는 양상이다. 《82년생 김지영》 《현남 오빠에게》 《다른 사람》 등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을 들여다본 소설이 큰 호응을 얻는 등 지난해부터 문단과 서점가에 불고 있는 페미니즘 바람이 연극 무대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의 기획프로그램 ‘산울림 고전극장’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에서 여성을 불러오는 무대를 연이어 선보인다. 극단 블루바이씨클프로덕션이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공연하는 ‘5필리어’와 창작집단 LAS가 다음달 21일부터 4월1일까지 무대에 올리는 ‘줄리엣과 줄리엣’이다.
임수진 극장장은 “신진 예술단체들에 셰익스피어 작품의 재해석을 맡긴 결과 여성을 중심에 두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집중 조명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며 “젊은 연극인들이 현실을 반영한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공통된 주제가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햄릿’ 원작에서 오필리어는 연인 햄릿 때문에 실성하고 물에 빠져 생을 마감한다. ‘5필리어’는 우리 현실에서 안타까운 죽음으로 삶을 다했거나 죽음의 경계에 놓인 젊은 여성들을 ‘다섯 명의 오필리어’로 등장시킨다. 극 중 오필리어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남은 억압의 흔적을 드러내고 정화한다. 김준삼 연출은 “여성들이 직면하는 위험은 일상적”이라며 “자살이든 타살이든 젊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는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성이나 젠더의 벽을 허물고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성소수자 권리 운동과도 맥을 같이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레즈비언의 사랑 이야기로 각색한 ‘줄리엣과 줄리엣’은 이런 흐름과 닿아 있다. 배경과 설정은 원작과 같지만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이 모두 ‘줄리엣’이란 이름의 여성이다. 이기쁨 연출은 “오늘날 성소수자들이 기성 관념에 맞서는 모습이 원수지간인 집안의 반대로 사랑이 좌절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습과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음달 4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창작극 ‘더 헬멧’도 여성주의의 맥락에서 눈길을 끈다. 1987~1991년 한국의 서울과 내전 중인 시리아 알레포를 배경으로 한다. 서울 편은 민주화운동 속에 존재했던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학생운동을 하는 여학생과 여경이 극을 이끌어 간다. 외모로 여성을 폄하하거나 여경에게 커피를 타라고 지시하는 남성의 모습을 통해 성차별을 비틀기도 한다. 대본을 쓴 지이선 작가는 “민주화운동에서 잘 부각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집단 페미씨어터는 올여름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개최를 목표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모금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390여 명의 후원자가 1100여만원을 모았다.
나희경 페미씨어터 대표는 “연극을 보다 보면 왜 여성 캐릭터는 엄마 또는 나쁜 년인지, 성소수자는 왜 다 불행한 삶을 사는지, 젠더 이분법을 넘어서는 캐릭터는 왜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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