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七年之痒(칠년지양)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7년이란 세월이 지나면 가려움증이 생긴다’는 말이다. 三十年河東 三十年河西(삼십년하동, 삼십년하서)라고 해서 ‘30년이 지나면 동쪽과 서쪽마저 바뀐다’는 말도 있다. 한·중 양국이 수교한 지도 25년이 넘었다. 변화가 느린 옛날에도 강산이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밀월기도 있었고, 껄끄러운 시기도 있었다. 기업과 개인을 막론하고 중국에서의 사업과 삶을 힘들어 하는 이가 점점 많아진다. 한편으로는 빈손으로 중국에 가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 어렵다고 중국을 떠나는 기업 중에 과거 중국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기업도 있다. 중국이 예전에는 호의적이었는데, 지금은 적대적인가? 예전에는 우리가 일하기에 편했는데 지금은 어려워졌는가? 중국이 변한 것은 맞다. 어려운 것은 맞다. 하지만 좀 곱씹어봐야 할 게 있다.
강산은 바뀌어도 사람은 안 바뀐다
필자가 지난 20여 년간 귀가 따갑게 들은 말들이 있다. “중국도 이제 글로벌화하고 있다”, “인치(人治)에서 법치(法治)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더 이상 관시는 통하지 않는다” 등이다. 그럴수록 중국을 훨씬 더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예측도 갈수록 쉬울 것이라고) 주장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 말대로라면 우리는 중국에서 갈수록 경쟁력이 생겼어야 한다. 최소한 지금쯤은 중국에 대한 예측이 더 정확해졌어야 한다. 현실은 반대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예측과 대응은 한마디로 늘 ‘우왕좌왕’이다.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 유일한 대책인 듯하다. 우리가 원하는 (법치로, 또 투명한) 방향으로 환경이 변했는데 우리의 사업은 더 나빠지는 모순이 나타났다. 중국에서 적응해가는 다른 나라의 경쟁사들을 보면 우리만 퇴보하는 느낌이다.
경험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간접 경험보다는 직접 경험이 학습 효과가 배가된다. 하지만 직접 경험이라고 해도 그냥 지적 자산이 되지는 않는다. 분석하고 학습해야 한다. 피드백이 전제돼야 한다. 시행착오는 소중한 직접 경험이지만, 피드백이 없다면 수업료만 내고 배운 것은 없게 된다. 결과만 알고 지나가면 안 된다. 이유, 배경, 과정 등 전체적인 맥락을 분석하고 공유해서 자산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를 수집하고 입력하는 일이 첫 단계인데 이는 현지 중국인들이 한다. 제대로 된 출력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전제는 입력이 왜곡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지화의 핵심은 ‘사람’이다. 중국에서의 인재(人材)는 업무 능력 외에도 성실성(기업체에서는 이를 충성이라고 부른다)을 자세히 봐야 한다. 대만의 저명한 인류학자 천치난(陳其南)은 중국 직원들의 특징에 대해 “직원들이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늘 자기 가족의 번성과 존속이므로, 사익을 도모하는 행위가 부단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A기업이 투자지를 물색했다. 중국인 고위간부 ‘갑’은 B지역을 (다른 때는 늘 중립적이었는데 이례적으로) 강력하게 추천했다. 때로는 고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보고서도 올렸다. 얼마 전에 중국인 관리한테 들은 말이다. “그 사람(갑)이 그 투자를 유치하고 대가로 B지역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소문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내 외자기업에서 늘 벌어질 수 있는 사고다.
'백락의 안목'이 필요하다
千里馬常有伯樂難尋(천리마상유백락난심: 천리마는 늘 있지만 백락은 찾기 어렵다). 춘추시대 손양(孫陽)은 명마를 가려내는 안목이 뛰어나 사람들이 그를 존중해 백락(伯樂)이라고 불렀다. 인재는 오히려 많지만 인재를 알아보는 이는 드물다. 현지 인재를 얻기 위해 인재 채용 책임자를 중국인에게 맡기곤 한다. 당연한 선택이지만 역시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중국인 조직 내에서의 지나친 ‘혈연’ 및 ‘지역적 유대감’이다. 가토 도루라는 일본 학자는 “중국인 노동자가 혼자 몸으로 낯선 마을에 가도 동향인의 공동체에 뛰어들기만 하면 최저한의 생활이 보장돼 굶어 죽을 염려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중국인들은 자기 집안사람들을 채용함으로써 주위를 견고하게 한다/…/이런 식으로 친척을 (조직 내로) 끌어들이는 습관은 오늘날의 중국사회에서도 보편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파벌주의’가 만연해 있음을 설명해준다.
중국인 인사책임자의 DNA에도 분명 ‘가족주의적 백락’의 본성이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핵심 인재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선 그의 성실함이 확인돼야 한다. ‘천리마’와 ‘백락’도 중요하지만 우선 이들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빨리는 달리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면 큰일이다. 바로 인재(人才)가 인재(人災)가 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