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자율'에 맡긴다던 금감원,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 나선다

입력 2018-02-12 20:46
수정 2018-02-13 09:47
업계 "당초 취지 벗어나" 우려


[ 김우섭 기자 ] 금융감독원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한 기관투자가가 제도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원칙 이행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조항은 없는지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인 금감원이 민간 자율로 제정한 스튜어드십 코드의 이행 점검을 맡는 건 당초 취지에서 벗어난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12일 발표한 ‘2018년 업무계획’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안착시키기 위해 기관투자가의 참여와 이행 현황을 모니터링해나가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류국현 금감원 자산운용감독국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투자가가 늘고 있지만 이 원칙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할 기관이 없다”며 “제도가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금감원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6년 12월 기업지배구조원과 자산운용업계,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이 참여해 제정한 민간 자율 규범이다. 23개 기관투자가가 도입 의사를 밝혔다.

당초 스튜어드십 코드는 금융당국이 주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도 도입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자 민간 주도로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 기관은 업계 반발을 의식해 따로 정하지 못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영국은 별도의 재무보고위원회(FRC)라는 공적 기관을 설립해 점검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 등 국책 금융회사의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가산점을 받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기관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에 위탁운용사 선정에서 최대 2점의 우대 평점을 주기로 작년 4월 결정했다.

금감원은 민간 자율 규범 형식으로 시작된 이 제도의 취지를 최대한 살린다는 방침이다. 우선 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문제가 되는 조항이 있는지 들여다 볼 방침이다. 또 제도가 정착됐다고 판단되면 참여 운용사들이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류 국장은 “이 제도를 도입하는 운용사를 늘리고, 제도가 잘 정착되도록 확인하려는 취지”라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당장 제재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는 금감원의 이런 방침에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법적 제재는 없다고 하지만 금감원이 나서면 운용사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처음엔 민간 자율이라고 해놓고 이제는 관(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스튜어드십 코드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 기관투자가가 단순히 주식만 보유하지 않고 의결권 행사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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