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달러 인프라 투자 나선 트럼프… 재정적자 늘려 금리급등 역풍 맞나

입력 2018-02-12 19:55
트럼프 경기부양책의 '두 얼굴'

대규모 감세·예산 증액 반영 땐
재정적자 한해 1조달러 넘을 듯
적자 메우려고 국채 발행 늘리면
금리 밀어올려 증시 추락 가능성

도로·항만 등에 1.5조달러 투입
건설 인·허가 절차 대폭 간소화


[ 김현석 기자 ] 미국 정부가 12일(현지시간) 1조5000억달러(약 1632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1조달러를 웃돈다. 감세와 예산 증액으로 재정적자가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인프라 예산까지 대규모로 편성되면 국채 금리 상승세를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채 금리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증시엔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인프라 투자, 재정적자 늘리나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인프라 투자 계획의 핵심은 두 가지다.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를 도로와 항만, 공항, 상하수도 등 인프라 개선에 투입하되 이 중 2000억달러를 연방 예산으로 투입하고 나머지는 주·지방정부 등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기업 돈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2000억달러 중 1000억달러를 지자체 투자를 유도할 인센티브로 쓰고, 나머지는 농촌 인프라 개선 등 연방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에 사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부터 위스콘신, 루이지애나, 버지니아, 메인주 주지사 등을 만나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인프라 건설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것도 주목된다. 환경 규제 등을 줄여 10년가량 걸리는 공사 기간을 1~3년으로 줄이고 비용도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연방 예산 2000억달러는 기존의 다른 예산 일부를 삭감해 마련하기로 했다. 재정지출이 많은 ‘큰 정부’를 반대하는 공화당 내 강경 목소리를 반영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연방 예산 투입 규모를 1조달러로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는 “각 주와 도시로 부담을 떠넘기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민간 투자가 늘면 고속도로 이용료 등이 올라 국민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민주당은 주장했다.

민주당은 유류세 인상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1993년 이래 가솔린 1갤런(3.8L)당 18.4센트로 유지돼온 세금을 25센트로 높이자고 요구한다. 백악관은 다른 항목에서 인프라 예산을 삭감하는 게 우선이라며 아직은 유류세 문제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채권 시장, 증시에 부담될까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인프라 투자는 그동안 증시에 호재로 작용해왔다. 인프라와 관련된 많은 기업 주가가 올랐다. 최근 들어 금융시장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감세로 올해 재정수입이 1500억달러 줄게 된 상황에서 향후 2년간 3000억달러가 증액된 연방정부 지출안이 확정됐다. 비영리 초당파 기구인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지난주 의회를 통과한 지출안에 따라 재정적자가 앞으로 10년간 4200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여기에 상당액의 인프라 예산이 추가되면 지난해 6657억달러였던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올해 1조달러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재정적자 증가는 그렇지 않아도 요동치는 국채 금리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실장은 11일 폭스뉴스선데이에 출연해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전쟁, 경기침체 때나 볼 수 있는 5%로 예상되는 데 위험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분명히 금리가 급등할 위험이 있으며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다만 “경기를 활성화해 세수를 늘린다면 재정적자를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재정적자인 상태에서 지출을 늘리려면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미 재무부의 올해 국채 발행 규모가 작년보다 80% 늘어난 1조달러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채 공급이 늘어나지만 시장 수요는 줄고 있다. 지난 8일 미 국채 30년물 입찰에서 포괄적 수요를 나타내는 응찰률은 2.26배, 해외 중앙은행들의 수요를 보여주는 간접낙찰률은 61.2%로 작년보다 부진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 등을 대거 매입하던 미국 중앙은행(Fed)도 작년 말부터 국채를 비롯한 보유 자산을 축소하고 있다.

이런 국채 수급은 국채 금리 상승(국채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인베스코의 크리스티나 후퍼 수석전략가는 “감세와 예산 증액이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며 “시장은 국채 발행 증가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지난 5일 언론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인프라 건설 부양책은 경제 성장에 기여하기보다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해 금리 상승을 부를 것”이라고 관측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