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일자리는 경제 발전의 결과물
동맥경화 걸린 노동시장 문제 해결하고
혁신성장으로 새 일자리 활로 찾아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얼마 전 지인과 청년 실업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청년 취업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신기루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담아내는 강의를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랬더니 지인은 일본을 예로 들며 인구 고령화 영향으로 한국도 3~4년 내에 노동력 부족 시대에 접어들면서 청년 일자리가 넘쳐날 것이라고 했다. 위로의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등 청년 실업 문제와 불법파견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이 지난해 청년 취업 희망자 대비 취업자 비율이 대학 졸업생은 97.6%, 고등전문학교 졸업생은 100%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역전된 게 사실이다.
지난해 한국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9.9%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후 급상승한 청년 실업률은 이후 7~8%대에 머물다가 2014년 9.0%, 2015년 9.2%, 2016년 9.8%로 악화일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의하면 청년층 중 일자리 수요가 가장 많은 25~29세 인구는 2014년 326만 명을 저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1년에는 367만 명에 달한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의 자녀들인 ‘에코붐’ 세대가 취업시장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25~29세 인구는 2022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30년에는 263만 명으로 10년 새 100만 명 이상 줄어든다. 연도별로도 2022년 -3만8000명, 2024년 -9만 명, 2026년 -10만 명, 2028년 -18만 명으로 감소 속도가 빨라진다. 일본의 청년 실업이 단지 생산가능인구 격감으로 해결됐다면 한국도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 과연 그럴까?
기초 경제이론에 의하면 노동수요는 파생수요로, 노동이 생산해 내는 상품에 대한 수요에서 나온다. 일자리가 늘기 위해선, 상품수요가 주어졌다면 고용비용이 낮아져야 하고 임금이 주어졌다면 상품수요가 늘거나 노동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성장이 정체된 상태에서 일자리를 만들려면 노동시장 유연성을 늘리거나, 규제 철폐와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성장에 대한 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세계 성장률을 밑도는 수준의 성장궤도에 접어든 한국 경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자리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자리 확대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정해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년 고용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 각 부처 관계자를 강하게 질타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지난달 일자리 점검회의에서 언급했다시피 지난 10년간 21회에 걸쳐 마련한 청년 고용 대책은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이를 정부 대책이 충분하지 못했거나 의지가 없었기 때문만으로 볼 수는 없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정규직 고용 보장이 강한 나라로 노동시장이 임금이나 기능, 수량 면에서 모두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 아직도 연공급형 보수체계가 강해 생산성을 반영한 임금 설정이나 노동수요 변동에 따른 임금 변화가 어렵다. 높은 대학 진학률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로 인한 중소기업 기피 등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 청년층은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자격증 취득이나 인턴실습, 어학연수 등 다양한 취업 준비 활동에 뛰어들고 있다.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하거나 졸업을 미루는 경우가 늘고 있고, 직무와 연관성이 적은 소위 ‘스펙 쌓기’에도 열심이다. 자의든 타의든 청년층의 고용 불안 기간이 길어지면 청년 개인의 인적자원 개발을 저해해 생애에 걸친 장기적 소득 손실을 발생시킨다. 이는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인적자본 축적 수준을 낮춰 잠재성장 수준을 떨어뜨리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의 청년 고용이 나아진 것은 인구구조 변화도 있지만 노동시장의 제도 개선과 경제 상황이 좋아진 덕이 크다. 대통령이 청년 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경제 발전과 성장의 결과물이다. 진정으로 청년을 생각한다면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혁신성장정책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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