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전형이란 주장 틀렸다"… 재판부, 특검 이례적 질타

입력 2018-02-05 17:36
이재용 부회장 집행유예

희비 갈린 항소심
박근혜·이재용 '0차 독대' 등 특검 주장 인정하지 않아
"승계는 가상의 틀" 이라는 변호인 주장 받아들여
법정서 환호·탄식 교차…특검 관계자 고개 떨궈


[ 신연수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2심 선고가 진행된 서울고등법원 312호 법정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재판 시작 30여 분 전부터 102석의 방청석이 꽉 찬 법정은 잡담하는 사람 하나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시종일관 흘렀다. ‘정경유착은 없었다’는 재판장의 질타에 특검은 망연자실했다. 삼성 측은 최종선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극도의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경유착·승계는 가상의 틀”

재판 시작 10분 전. 법정에 미리 도착해 있던 이 부회장과 삼성 전직 임원들은 긴장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법정에 들어선 특검 관계자들과 이 부회장은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오후 2시 정각, 이 부회장의 항소심을 맡은 정형식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7기)를 비롯한 좌우 배석판사가 재판정에 섰다. 선고 시작을 알리며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던 정 부장판사는 과거 특검과 원심 재판부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하며 특검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나 싶었던 재판의 기류가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정경유착은 이 사건에 없었다”며 “삼성과 박 전 대통령 사이의 명시적, 묵시적 부정한 청탁 모두 없었다”고 판단했다. 정치권력과의 뒷거래를 통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정경유착 의혹은 특검이 만든 일종의 프레임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대신에 ‘기업도 피해자’라는 판단을 덧붙였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 최고 정치 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을 겁박하고 그 측근인 최순실이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결과”라며 “삼성은 대통령과 최씨의 요구를 미처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뇌물을 공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삼성 계열사들이 수주 등에서 전 정부의 특혜를 받은 사실이 없음을 제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국정농단의 책임소재를 밝혔다. “우리 형사법 체계는 뇌물을 공여한 사람보다 수수한 사람인 공무원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묻는다”며 “국정농단의 주범은 헌법상 부여받은 책무를 방치하고 대통령의 지위를 타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고 사익을 추구한 최씨로 봐야 한다”고 질타했다.

다만 재판부는 국내 최대 기업에 부과된 사회적 책임을 상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재판부는 “권력자의 비위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 경영진에게 부여된 책임”이라며 “삼성 임직원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을 가중한 것은 책임이 크다”고 꾸짖었다.

◆재판부 “기업도 피해자”

오후 3시10분께 마침내 재판장이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2월17일 구속된 이 부회장이 353일 만에 석방되는 순간이었다. 법정에선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재판 내내 침착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이 부회장은 선고 직후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재판정을 떠났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 전직 임원들도 비로소 긴장감이 다소 풀린 표정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구치소 앞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좋은 모습 못 보여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특검 관계자는 선고 진행 내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개를 살짝 떨구는 모습도 보였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의 핵심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 작업은 없는 것으로 인정했다. 항소심 막판에 추가한 2014년 9월12일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0차 독대’도 증거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특검의 모든 주장과 논리가 허물어진 것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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