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민 계명대 영문학과 교수
범죄소설의 계보학
[ 심성미 기자 ]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안나 캐서린 그린의 《버터 워스》…. 노처녀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영문학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대중적 찬사와 비평을 동시에 가졌다. 그런데 왜 꼭 성공한 여성 탐정은 ‘나이 든 독신 여성’일까.
계정민 계명대 영문학과 교수(사진)는 최근 펴낸 《범죄소설의 계보학》(소나무)에서 이 같은 사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10여 년간 범죄소설을 분석한 논문 15편을 써온 그는 “흰머리와 온화함으로 상징되는 노처녀 탐정은 무성(無性)적 존재로 인식돼 당시의 남성 우월주의를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스 마플》의 주인공은 굉장히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당시의 바람직한 여성상과는 다른 점이 많은 캐릭터였죠. 그럼에도 남성들의 큰 반발 없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결혼 제도 바깥에 존재한 늙은 여자’로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늙은 여성 탐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가부장제를 지지하는 발언도 ‘노처녀 탐정 소설’이 탄압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계 교수는 “마플은 여성 참정권을 반대한다는 대사를 뱉어내며 ‘여성은 가정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도 말한다”며 “노처녀 탐정 캐릭터는 비록 여성이라 할지라도 젠더 규범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답습하면서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안전한 존재’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책은 ‘노처녀 탐정’ 이야기 외에도 ‘셜록 홈스는 왜 귀족 백인 남성으로 그려졌나’ ‘터프가이는 왜 고독한가’ ‘팜파탈은 단지 섹시하기만 한 여성인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채워져 있다. 계 교수는 “추리소설이야말로 당대의 계급, 인종, 젠더 이슈가 첨예하게 각축전을 벌였던 문학적 요충지”라며 “추리소설은 단순히 ‘재미로 읽는 상업소설’로 폄훼하는 문단의 분위기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 교수는 이 책에서 1950년대 이전의 추리소설을 다뤘다. 1960년대부터는 추리소설에서도 캐릭터가 풍부해졌다는 게 계 교수의 설명이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급진적인 미국 추리작가 새러 패러츠키처럼 여성의 한계를 거부하는 캐릭터를 그리는 작가도 많아졌습니다. 탐정이 백인 남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인 경우도 많죠.”
추리소설을 전공한 계 교수가 눈여겨본 한국 추리소설가는 누구일까. “유현산 작가나 정유정 작가의 작품을 인상 깊게 봤다”며 “고(故) 최인호 작가의 《지구인》은 뉴게이트 소설과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특징을 합한 걸작”이라고 소개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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