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사회 유지 위한 관습, 내 행복이 우선… 연애도 옵션

입력 2018-01-31 18:44
2030 비혼의 경제학


한경 인턴기자 리포트

2030세대의 시각으로 이슈 현장을 매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한경인턴기자 리포트’는 청년들의 젊은 생각과 품격 있는 한국경제신문의 만남입니다. 이번 주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비혼주의’와 연애·출산 등에 대한 2030세대의 생각과 경험을 전합니다. 남정민(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왼쪽부터) 이인혁(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김수현(서울대 인류학과 석사과정 2학기) 이건희(연세대 의류환경학과 4학년) 인턴기자가 전하는 생생한 현장으로의 여행을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KBS 인기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는 한때 ‘비혼’과 ‘노 키즈(No kids)’를 선언했던 서지태(이태성 분)·이수아(박주희 분) 커플이 등장한다. 4년간 신념을 지켜가던 이 커플은 결국 ‘비혼’은 포기했지만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자 출산할지를 두고 또 갈등을 겪고 있다.

비혼족과 노키즈족은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남자친구와 1년 반째 연애 중인 윤지영 씨(25)는 주변에 ‘비혼주의자’임을 선언했다. “100세 시대인데 젊은 나이에 한 사람을 선택해 평생 함께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윤씨의 생각이다. 그는 “결혼은 내 행복이 아니라 집안이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보다 내 행복이 더 중요”

연애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산한다? 2030세대에서 이 공식은 깨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학 4학년 박모씨(25)는 “부모님 세대는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가족을 꾸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결혼과 출산, 양육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2030세대는 결혼뿐 아니라 연애도 하나의 ‘옵션’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3년째 솔로인 대학생 이경은 씨(24)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얼른 남자친구를 사귀라”는 주위 어른들의 채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이씨는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면서 충분히 내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낀다”며 “삶의 행복을 연애와 결혼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동거 넘어 ‘연속적 일부일처제’까지

결혼에 따른 막중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최근 결혼 문제로 여자친구와 헤어진 방현우 씨(30)는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부터 막힌다”고 털어놨다. 대기업 차장 이동훈 씨(39)는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었다. 이씨는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면 65세가 되는데 어떻게 키울지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2013년 기준)에 따르면 자녀 1인당 대학교 졸업까지 월 양육비는 118만원, 총 양육비는 3억890만원에 달한다.

자연스레 동거 사실혼 등 새로운 남녀 간 결합 유형도 확산되고 있다. 유모씨(26)는 얼마 전 자취방 보증금을 빼 남자친구의 자취방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유씨는 “함께 장을 보고 밥을 해먹으며 실제 결혼생활을 체험하고 있다”며 “따로 살 때보다 경제적으로도 훨씬 이익이고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프랑스인 피에르 뒤보 씨(25)는 “프랑스 젊은이들도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가 복잡한 결혼보다 동거를 선호한다”며 “팍스(PACS)라는 동거계약 제도가 있어 최소한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팍스를 도입한 이후 출산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연속적 일부일처제’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앤드루 셸린 미국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회전목마’에 비유했다. 회전목마가 돌아가듯 결혼 생활이 계속해 반복된다는 뜻이다. 대학원생 강모씨(29)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가 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소개했다. 그는 “영화 속 주인공이 남편과 사랑이 식자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재혼하더니 이후 또다시 다른 사랑을 찾아나서는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급변하는 결혼관

전문가들은 이처럼 확산되고 있는 비혼주의가 혼인 및 출생아 수 동반 감소로 이어져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한층 더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혼 건수는 꾸준히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2016년 5.5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출생아 수도 마찬가지다. 2012년 48만4550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2016년 역대 최저인 40만6200명으로 줄었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40만 명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1인 가구 수는 급증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5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30%(670만 가구)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한국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늦게 시작됐을 뿐 유럽은 이미 1960~1970년대 결혼제도 파괴 붐이 일어났다”며 “사실혼 등 동거제도 역시 부부로 인정하고 보호하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건희/남정민 인턴기자 dotorim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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