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파른 원화절상, 완화 대책 서둘러야

입력 2018-01-31 18:12
"'1달러=1050원' 위협하는 원화강세
미국의 대중 압박에 '희생양' 우려
자본유출입 안정화 등 대책 필요"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


원화강세 속도가 무섭다. 원·달러 환율이 급락해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1050원 선도 위협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월2일 1208원50전을 고점으로 하락세를 보이다가 10월 이후에 급락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1월 이후 엔·달러 환율 하락은 미미한 반면 원·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원·엔 환율이 2015년 중반~2016년 중반을 제외하고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원·엔 환율 하락은 한국의 수출 증가세를 크게 둔화시켰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수출 호조와 전반적인 세계경제 회복으로 수출증가율이 큰 폭으로 신장됐지만,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등 일부 수출호조 부문을 제외한 제조업 경기는 빈사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황형 흑자와 반도체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제조업평균 가동률은 역대 최저인 71% 수준까지 하락해 제조업 장기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가려 전반적인 경기불황을 보지 못하고 다른 제조업의 수출부진에 대한 대책이 미흡할 수도 있는 ‘반도체 착시현상’이 우려된다. 이런 현상은 1995년에도 발생해 원화가치가 강세를 보인 결과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한 바 있다. 2012년 이후 지속되는 경상수지 흑자는 2017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출은 저조한데도 성장과 투자 부진에 따라 수입이 감소해 발생한 불황형 흑자였다.

원화강세의 주요 원인은 △경상수지 흑자와 반도체 관련 기업의 영업이익 호조에 따른 주가상승 △원화가치 절상 기대에 따른 증권투자 순유입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이 연이어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되고 있어 환율정책의 운신 폭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관찰대상국 중 독일의 경우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면 남유럽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고, 일본은 대미(對美) 흑자가 한국의 세 배에 달하는데도 견고한 미·일동맹 관계를 고려해 미국이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중국과 한국만이 미국의 공세 대상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미·일 간, 한·미 간 신뢰 차이도 환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우선주의’ 통상·환율정책이 달러가치 하락을 지속시키는 모습이다.

한·미·일 3국 간 통화정책 차이도 중요한 요인이다. 2012~2015년 미국과 일본은 양적완화(QE) 통화정책을 추진한 반면 한국은 단순한 금리 인하정책에 머물렀다. 현재도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지속해 금리를 제로(0)수준으로 유지, 엔화 약세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금리인상으로 원·엔 환율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달러와 엔화 대비 원화가치 상승으로 인해, 1980년대 후반 미국이 대일(對日)적자 해소를 위해 플라자회담, 슈퍼 301조 발동 등 엔고 전략을 추진할 때 한국도 희생양이 됐던 것과 같은 전례가 반복될 수 있다. 이번에는 미국이 대중(對中)적자 해소를 위한 환율·통상 압력 과정에서 다시 한국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구조개혁, 규제혁파로 투자를 활성화해 불황형 경상흑자폭을 축소하고, 대미 신뢰회복으로 환율·통화정책의 운신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외화유동성을 확보해 미국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외화유동성 위기 가능성에 대비하고 금리 추가 인상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 밖에 경상수지 흑자분으로 공기업 대외채무를 상환하고 거주자외화예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원화 절상압력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2011년 파리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합의한 ‘자본이동관리원칙’을 활용, 자본유출입 안정화를 위한 거시건전성 규제 강화 등 다각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