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차등의결권, 대-중소기업 차별할 일 아니다

입력 2018-01-31 18:07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중소·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방안을 법무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차등의결권은 기업인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주식 1주에 여러 개의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김 위원장이 사회적 합의를 조건으로 내걸긴 했지만, 재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차등의결권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차등의결권 허용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경제 강국은 물론 사회민주주의 복지모델 원조(元祖)국가인 스웨덴과 덴마크도 이미 오래전에 허용했다. 자국의 대표 기업과 벤처기업들이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과 단기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구·개발(R&D)과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이다.

미국의 구글이 세계적인 혁신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차등의결권으로 경영이 안정된 덕분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 알리바바가 2014년 상장 때 홍콩 증시 대신 뉴욕 증시를 선택한 것도 차등의결권이 결정적 이유였다. 창업자 마윈(지분 7%)은 소프트뱅크(28%), 야후(16%) 등 자신보다 지분이 많은 주주가 있어도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차등의결권이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주주 특혜 시비와 소액주주 보호 주장에 막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데다 변변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어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2003년 SK-소버린 사태, 2006년 KT&G-칼 아이칸 사태, 2015년 삼성물산-엘리엇매니지먼트 사태가 대표적이다. 선진국처럼 차등의결권을 규모에 상관없이 모두 부여해야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이라는 제도 취지에 맞고, 국민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차등의결권은 기업의 글로벌화에도 기여한다. 우리나라 상속세 세율은 최대주주의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해 최고 65%에 달한다. 농우바이오 등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을 견디지 못해 가업 상속을 포기하고 매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투기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