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위 다시 열어 탈락자 뽑고… 서류합격 늘려 특정인에 면접 최고점

입력 2018-01-29 18:06
수정 2018-01-30 07:19
공공기관 채용비리 '복마전'

'낯뜨거운 신의 직장' 채용비리 백태

특별점검 1190개 기관 중 946곳 비리 4788건 적발

비리 연루 임직원 197명, 29일부터 업무에서 배제
유죄 땐 손해배상소송도 검토


[ 오형주 기자 ]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 채용이 검은 비리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이 정부의 전수조사 결과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채용비리는 국책은행·대학병원·연구소 등 기관 유형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특별점검 대상 1190개 기관 중 무려 946개(79%) 기관에서 4788건의 채용비리 혐의가 적발됐다.

◆합격자 내정한 뒤 채용절차 진행

정부가 29일 공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최종결과’에는 경찰에 수사가 의뢰된 33개 공공기관의 채용비리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해당 공공기관의 기관장 등 고위인사는 청탁 혹은 자의로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정해진 절차와 규정을 어기는가 하면 각종 부당한 압력 행사를 서슴지 않았다.


한국원자력의학원 고위인사 A씨는 인사위원회가 특정인의 채용을 부결시키자 이례적으로 인사위원회를 다시 열 것을 지시해 당초 불합격자를 최종합격자로 둔갑시켰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아예 고위인사 지시로 특정인을 합격자로 미리 내정한 뒤 이후 채용 절차를 형식적으로 운영했다. 한국광해관리공단 고위관계자는 자녀를 먼저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면접에서 최고점을 줘 손쉽게 정규직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취업준비생이 선망하는 금융공공기관으로 꼽히는 한국수출입은행도 다를 바 없었다. 수은은 당초 채용계획과 달리 채용 후보자의 추천 배수를 갑자기 바꿔 특정인을 뽑았다. 서울대병원은 서류 전형에서 합격 배수를 조정해 B씨를 합격시킨 뒤 면접전형에서 면접위원 전원이 B씨에게 점수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채용했다. 내정자를 제외한 나머지 수험생은 짜인 각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들러리를 선 것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고위인사 지시로 면접 위원을 내부인으로만 구성한 뒤 특정인을 위한 단독 면접을 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항공안전기술원 등에선 면접 위원이 아니라 고위인사가 면접장에 들어가 특정인에게 유리한 질문을 하는 식으로 부정채용을 했다.


◆비리혐의자에 손해배상도 청구

정부는 이번 특별점검에서 적발된 채용비리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업무에서 배제·퇴출시킬 방침이다. 정부가 수사의뢰 또는 징계 대상에 포함시킨 현직 공공기관 임직원은 모두 197명이다. 이들은 모두 이날부터 업무에서 배제됐다. 수사 결과 검찰에 기소되면 기관 자체 내부 인사규정상 직권면직 등을 적용해 퇴출시킨다.

수사의뢰된 현직 공공기관장 8명은 정관상 해임 절차 등을 적용해 즉시 해임하기로 했다. 이미 퇴직한 기관장 14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또 정부는 재판 결과 채용비리 관련 임직원의 유죄가 확정되면 각 기관이 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은 “부정 청탁 등 부적절한 채용 관행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꺾고 사회 출발선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중대한 범죄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회악”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기재부는 채용비리와 연루돼 즉시 해임하기로 한 현직 공공기관장 8명의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김 차관은 “기관장들의 혐의에 대해선 경찰 수사 중이라 현시점에서 개인 신상을 특정하거나 추정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이날 산하 공공기관 중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채용비리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김상진 관장 해임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해수부 감사관실은 해양생물자원관 이사회에 “감사 결과가 해임 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엄중하다”는 취지로 김 관장의 해임 사유를 통보했다.

정부는 앞으로 채용비리 상시 점검을 위해 ‘채용비리 점검회의’를 관계부처 합동으로 열고 권익위에 통합신고센터를 상설 운영하기로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