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파월 시대' 맞는 Fed… 매파와 트럼프 사이 '금리 줄타기' 성공할까

입력 2018-01-28 19:30
수정 2018-01-29 05:12
매파 늘어나는 FOMC…내달 4일 파월 의장 취임

이번주 올해 첫 FOMC
참석자 10명 중 5명 '새 얼굴'
2명은 확실한 매파 성향
내달 비둘기파 옐런 의장도 퇴임

파월, 경제학 박사학위 없어
일각서 "전문성 떨어진다" 우려
엘 에리언 전 핌코 CEO 등
월가 출신들 Fed 입성 기대감

올해 세 차례 금리 인상?
성장률 4%로 올린다는 트럼프
빠른 금리인상에 부정적일 수도


[ 뉴욕=김현석 기자 ]
다음달 4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Fed)에 ‘제롬 파월 시대’가 열린다.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는 변호사 출신 의장이 Fed를 이끈다. 파월의 임기는 완전고용 수준인 4.1%의 실업률, 3%에 육박하는 성장률 등 미국 경제가 101개월 이상 확장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시작된다.

그를 지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을 4%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는 매파 멤버가 대폭 확충됐다. 파월 의장은 이들 사이에서 적절한 금리 조정을 통해 경기 과열이나 침체를 막는 Fed의 선장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 금리정책은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에 상당한 파급력을 갖는다.

‘비둘기’ 날아가고 ‘매 떼’ 등장

지난해 12월 FOMC 회의에선 몇 년 만에 이례적으로 ‘반대’ 두 표가 나왔다.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파)로 꼽히는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연방은행 총재와 찰스 에번스 시카고연방은행 총재가 “지나치게 빠른 금리 인상은 정책적 실수가 될 수 있다”며 금리 인상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오는 30~31일 열리는 올해 첫 FOMC에는 참여할 수 없다. 12명의 지방연방은행 총재 몫 다섯 자리 중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제외한 네 자리는 매년 11명의 지방연방은행 총재가 1년 임기로 돌아가며 맡기 때문이다.

이들 대신 매파(통화 긴축 선호파)인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은행 총재와 중도파인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 총재, 성향이 불분명한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연방은행 총재가 새로 FOMC 회의에 참여한다. 비둘기파는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와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은행 총재뿐이다. 더들리 총재도 이미 사의를 밝혀 하반기부터 뉴욕연방은행 몫도 교체된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Fed 이사 다섯 명(재닛 옐런 현 의장과 파월, 랜달 퀄스, 라엘 브레이너드, 마빈 굿프렌드) 중에서도 신임인 굿프렌드 이사가 매파로 분류된다.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테일러 준칙’ 등 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그다. 지난 23일 미 상원 청문회에선 “몇몇 중앙은행이 너무 낮은 금리를 장기간 유지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FOMC 회의에선 10명의 참석자 중 5명이 새 멤버이고 그중 두 명은 확실한 매파다. 비둘기파인 옐런까지 이번 회의를 끝으로 Fed 이사에서 물러난다.

FOMC 멤버 대거 교체로 전문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덴마크 금융그룹인 단스크은행은 “옐런까지 떠나면 남은 Fed 이사의 Fed 경력은 파월 5년, 브레이너드 5년 등 10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신임”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파월은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옐런 등 전임 의장과 달리 경제학 박사가 아니다.

뉴욕 금융가 월스트리트는 이런 형세를 반긴다. 학계보다 월스트리트 출신이 Fed에 입성하면서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시장 목소리를 좀 더 반영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토비아스 레브코비치 씨티그룹 수석전략가는 다만 “Fed 내에 2000명이 넘는 경제학 박사가 있다”며 “파월은 그런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만 하면 된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학자보다는 실물경제 경험이 있는 인물을 Fed에 투입하자는 건 공화당과 월스트리트가 계속 주장해온 것이다. 파월은 물론 퀄스 이사도 월스트리트에서 일했으며, Fed 이사진 진입이 거론되는 모하메드 엘 에리언도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인 핌코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감세, 약(弱)달러, 유가 상승 변수

파월의 최대 과제는 2015년 말 시작된 기준금리 정상화다. 미국 실업률은 4.1%로 완전고용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대에 근접한다. 적절한 금리정책으로 경기 과열로 치닫는 걸 막아야 한다. 반면 자칫 과도한 금리 인상은 경기 상승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이라는 Fed의 두 가지 책무를 충실히 지켜야 한다.

Fed는 지난해 12월 FOMC 회의에서 올해 세 번의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차기 부의장으로 거론되는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 총재는 최근 “올해 금리 인상은 세 차례가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은행 총재도 “올해와 내년에 금리를 세 번씩 올려야 한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네 차례 인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11월 말 “미국 경기가 강력한 회복세여서 임금과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며 “Fed가 한 해 동안 기준금리를 네 차례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격 변동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지난해 4분기에 1.9% 올라 전분기(1.3%)에 비해 상승폭이 컸다. 근원 PCE는 Fed가 가장 중시하는 물가지표다. Fed는 그동안 PCE 기준물가가 목표치(2%)에 못 미치자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달러화 가치 약세가 이어지고 국제 유가는 급반등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지난 26일 3년여 만에 배럴당 66달러를 돌파했다.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ICE 달러인덱스는 3년여 만에 가장 낮은 88대까지 떨어졌다. 달러 약세는 수입 물가를 높이며, 유가는 물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가격에 영향을 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법인세 감세로 월마트, JP모간체이스, 월트디즈니 등 미국의 대표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임금을 올리고 있는 것도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연방은행 총재는 최근 “올해 네 차례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세 덕분에 성장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하락하는 만큼 돈줄을 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 3~4%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빠른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경기 호조가 트럼프의 공언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면 Fed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Fed가 금리를 올리는 데 지금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 시대의 Fed는 ‘독립성’을 지키는 게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