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4차 산업혁명이 성장 촉진 못 한다고?

입력 2018-01-28 18:03
"기술혁신은 '디플레이션 효과' 촉발
성장과 물가안정 두 마리 토끼 잡아
저금리·경기회복 길게 이어질 수도"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혁신기술이 근간이 되는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우리 옆에 와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다. 신기술이 생활에 재미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고 있고, 공장자동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증가시키리라는 것은 미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혁신이 디플레이션 효과를 통해 세계 경제의 회복세를 지속시키고 있음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미국의 예를 보자. 3%를 넘나드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고용호조, 자산시장 과열신호 등에 비해 금리인상 속도는 매우 완만하다. 물가상승률이 1%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물가상승률에는 ‘아마존 효과(Amazon Effect)’가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아마존은 방대한 데이터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 상품을 추천하고 로봇과 드론을 물류에 활용하는 등 획기적으로 효율성을 개선시키고 있다. 아마존의 부상과 더불어 미국 유통업계에 가격인하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미국경제학회(AEA)에서 오스틴 굴스비 시카고대 교수는 전자상거래 형태로 거래되는 물품의 가격상승률이 그렇지 않은 물품에 비해 연평균 3%포인트까지 낮다고 밝혔다. 미국 소비재구입의 약 10%가 전자상거래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적지 않은 디플레이션 효과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온라인 가격 경쟁이 인플레이션율을 0.25%포인트 떨어뜨린다고 분석했다.

성장과 고용 호조에도 미국의 임금 및 물가 상승률이 낮은 데에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도 한몫하고 있다. 우버, 에어비앤비로 대표되는 긱 이코노미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양한 선호와 특성을 가진 이용자들이 적시적소에 거래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인의 여가시간과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긱 이코노미가 확산되면서 자동차 등 내구재뿐 아니라 호텔과 같은 서비스 가격 상승이 둔화되고 시간제 근로 등 근로형태의 유연성이 확대돼 임금상승이 억제된다. 직접 물가를 낮추기도 하고 임금상승률을 낮춤으로써 물가를 덜 자극하는 효과도 있다.

한편 기술진보는 드러나지 않는 디플레이션 효과도 발생시킨다. 기술진보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가 질적으로 향상돼도 가격이 안 올라 물가상승률이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실제 인플레이션은 발표되는 수치보다 낮을 것이며, 발표된 인플레이션에 의해 조정된 실질GDP도 과소 측정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차 산업혁명이 성장을 촉진하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공급측면의 생산성 증가와 아울러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 증가를 통해서다. 그러나 앞에서 밝힌 것처럼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기술혁신의 결과로 일부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다른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기존의 수요를 감소시켜 기술혁신에 따른 수요의 순증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생산과 지출증가 메커니즘 외에도 디플레이션 효과를 통해서 성장호조와 물가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경기호조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부담이 없어 경기부양정책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4차 산업혁명이 이어질 경우 현재의 저금리와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기술혁신이 우회적으로 성장을 자극하는 효과를 감안하면 1980년대 중반 컴퓨터 등 신기술의 생산성 증대 효과를 부인한 로버트 솔로의 ‘생산성 역설’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