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34년 자동차맨' 윤갑한 현대차 울산공장장의 고언
[ 도병욱 기자 ]
“우리 직원들은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미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현대자동차에서 일한 윤갑한 울산공장장(사장·사진)은 26일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꼭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며 쓴소리를 시작했다. 회사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노사 갈등이 계속되면 회사가 쓰러진다는 경고였다. 그는 2012년부터 노사협상 사측 대표를 맡았다.
그는 “큰 기업도 지속적으로 갈등에 시달리면 쓰러진다는 사실을 많이 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한 기업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며 “조합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 회사는 괜찮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회사는 대내외적으로 매우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노조도 현실을 직시하고, 노사관계의 근원적 쇄신만이 소중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경영자의 퇴임사는 동료 임직원에 대한 감사인사와 지난 시절의 회고로 채워진다. 윤 사장이 회사를 떠나는 날까지 작심발언을 한 것은 지금 같은 노사관계가 계속되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윤 사장은 “현대자동차가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고, 나아가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 반드시 짚고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 있어 간곡한 마음으로 말씀드린다”고 마지막 쓴소리를 남긴 이유를 설명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총 24차례 파업을 벌였다. 이 때문에 8만9000여 대의 생산차질이 빚어졌다. 회사는 1조8000억원 규모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노조를 설립한 이후 네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년 파업을 벌였다. 총 451회에 걸친 파업에서 발생한 누적 생산 차질만 152만여 대다. 누적 매출 손실은 20조원이 넘는다. 지난해에는 노사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현대차 노사는 해를 넘긴 지난 16일 가까스로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마무리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회사 경영실적은 2010년 이후 가장 나쁜데도 노조는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고 윤 사장이 마지막 쓴소리를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퇴임하려던 윤 사장의 퇴임식이 약 한 달 뒤인 이날 열린 것도 임단협 타결이 계속 연기된 결과다.
195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윤 사장은 1984년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현대차 생산운영실장과 종합생산관리부장, 지원사업부 전무 등을 거쳤다. 2012년부터 울산공장장을 맡았고, 이듬해인 2013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노사관계가 악화되면 직원들의 집으로 일일이 ‘가정통신문’을 보내 합리적 노사관계를 만들어가자고 촉구했다. 2013년 8월에는 “파업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는 것은 구태적 관행”이라며 “이제는 ‘파업을 해야 회사가 더 내놓는다’는 교섭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윤 사장은 퇴임 후 고문으로 위촉됐다. 윤 사장 후임에는 현재 부공장장인 하언태 부사장이 선임됐다. 하 부사장은 현대차 생산기술기획지원실장, 생산운영실장, 종합생산관리사업부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부터 부공장장을 맡아왔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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