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더 나은 협상을 할 수 있다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다시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TPP 탈퇴’ 방침을 밝혔던 그가 복귀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배경이 주목된다. “끔찍한 합의를 했다”던 그가 입장 변화를 시사한 것은 미국 내에서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데다, 미국의 아시아지역 영향력 확대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빠진 뒤 TPP 참여 11개국은 일본 주도 아래 새로운 협정인 CPTPP(포괄·점진적 TPP) 협상을 마무리 짓고 오는 3월8일 칠레에서 공식 서명식을 할 예정이다. TPP가 되살아나자 미국 재계에서는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미국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을 벌이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가 CPTPP 타결에 적극성을 보인 점이 미국의 입장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북 제재 등 동아시아 정책에서 일본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2008년 미국이 처음 TPP 협상에 참가한 것 자체가 ‘중국 견제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일 양국이 TPP를 통해 아·태 지역 ‘무역의 룰’을 정하면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펴고 있는 중국은 이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TPP를 탈퇴했을 때 “중국 좋은 일만 했다”는 비아냥이 나왔던 것도 그래서다. 미국의 복귀가 현실이 된다면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약 37%를 점하는 TPP는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특히 양자 간 FTA 체결에서 한국에 훨씬 뒤졌던 일본은 단번에 열세를 뒤집을 수 있게 된다.
번번이 참여 기회를 놓쳐온 한국의 TPP 가입은 향후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주도국인 일본과 관계가 껄끄러운 데다 한국에 대대적 무역공세를 벌이고 있는 미국이 복귀할 경우 더욱 그렇다. 만에 하나 한·미 FTA는 폐기되고 미국이 참여하는 TPP가 온전히 살아날 경우 한국 무역은 길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세이프가드 발동에 이어지는 미국의 통상 행보를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