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청년실업 해소란 정부 시각부터 바꿔야… 스타트업이야말로 확실한 미래 성장동력이다"

입력 2018-01-25 18:49
혁신의 중국 질주하는 선전 (5) 한경 산·학·언 특별취재단 결산 방담

놀라운 선전의 혁신 현장
벤처인큐베이터에 20대 젊은이들이 빼곡히 앉아 일하는 모습에 소름
DJI·샤오미·화웨이 '짝퉁 오명' 벗고 디자인서도 세계적 수준 도달 확인

4차 산업혁명 앞서가는 중국
QR 코드로 음식주문서 계산까지 선전은 완전히 '현금없는 사회'
길거리에 널려있던 공유자전거, 6개월 만에 깔끔하고 편리하게 정리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한국, 세계적 벤처기업 키우려면 기술발전 속도보다


[ 이승우 기자 ]
“중국 정부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도전 기회를 주려고 규제를 최소화하고 인프라를 지원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정부는 돈만 풀고 규제는 안 푼다. 중국이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다운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스타트업이 기존 사업자와 충돌하면 정부는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정부가 기존 사업자 편만 들기 일쑤다. 스타트업이 클 수 없는 환경이다.”(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지난 14~17일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을 심층 취재한 한국경제신문의 산·학·언(産·學·言) 특별취재단이 귀국 직전 한자리에 모였다. 3박4일간 선전의 혁신 현장을 둘러보며 느낀 소감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은 중국의 빠르고 광범위한 혁신에 위기감을 느꼈다며 한국 정부의 과감한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신산업과 신기술에 쓸데없이 지원하겠다고 나설 게 아니라 규제를 포기하고 기업들이 스스로 혁신할 기반만 조성해주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차병석 한경 편집국 부국장=선전을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부터 얘기해보자.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선전 창업광장에 있는 벤처인큐베이터를 방문했을 때 대학 도서관 같은 사무실에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빈자리 없이 빼곡히 앉아서 일하는 광경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3박4일 내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6개월 전 선전에 왔을 때만 해도 공유자전거가 온 길거리에 널려 있었다. 편리하지만 문제도 많아 보였다. 중국 정부가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었다. 이번에 와서 보니 거리 한 곳에 공유자전거 주차지역을 만들어놨더라. 공유자전거를 법 테두리 안에 자연스럽게 편입한 것이다. DJI와 샤오미를 방문했을 때는 중국이 기술력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중국은 완전히 ‘현금 없는 사회’로 변한 것을 확인했다. QR 코드를 이용해 스타트업은 물론 소상공인이 쉽게 사업할 수 있는 결제 환경이 조성됐다. 결제뿐만 아니라 음식 주문, 와이파이 연결 등 다양한 분야에서 QR 코드를 쓴다. 공유경제도 이런 환경에서 가능해졌다. 선전을 보고 미국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민자의 도시라는 점과 그로 인한 높은 개방성을 지녔다는 점에서다. 집값과 물가도 실리콘밸리 못지않게 비싸다. 젊은이들이 이 도시에서 살려면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아니라 ‘대박’이 가능한 스타트업으로 간다. 선전은 중국의 인재가 몰려드는 도시가 됐다.

▶이효진 대표=선전의 창업가와 투자자를 만났을 때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모습에 놀랐다. ‘정부와 사회가 우리를 밀어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막지는 않는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확신이 있어야만 고객과 제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구태언 변호사=도로에 공유자전거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이런 데서 유연한 규제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도로 불법 점유란 딱지가 붙어 공유자전거 사업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은 큰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세계로 진출하는 글로벌 기업이 쉽게 나온다. 일종의 수출 기업인 셈이다. 한국은 여전히 공장을 지어 해외에 파는 제조업체만 수출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차 부국장=중국의 혁신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한국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임 센터장=처음 시작하는 스타트업 규모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3~5년 지나고 보면 중국 기업은 수백억원을 투자받고 직원도 수백 명으로 늘린 반면 한국 기업은 수십 명에 머물고 있다. 내수시장 크기의 차이 때문이라고 자조하지만 투자생태계가 갖춰져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다. 기업도 돈이 있어야 클 수 있다.

▶김 대표=중국 스타트업들을 방문하면서 나 스스로 ‘이런 건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안 될 것’이라고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다. 중국에선 창업자, 소비자 중심으로 서비스가 개발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박 교수=한국은 매년 20조원씩 수십 년간 연구개발(R&D)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남은 것이 없다. 시장과 연결되지 않고 독립된 R&D 체계에선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만 양산된다. 실리콘밸리 또는 선전에선 연구원들이 활발하게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한국에선 이공계 석·박사 80% 이상이 대학과 연구소에만 앉아 있다.

▶이광근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중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춰야 한다. 젊은이에게 무조건 창업을 부추길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기술을 갖출 수 있도록 대학이 연구와 교육에도 더욱 노력해야 한다.

▶차 부국장=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구 변호사=4차 산업혁명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완전히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새마을운동 마인드’에 머물러 있다. 정부 회의에 참석해보면 여전히 공무원들이 민간을 육성하고 계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플레이어도 아니고, 감독도 아니다.

▶김 대표=네거티브 규제(원칙 허용·예외 규제) 도입도 중요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공무원들의 평가 체계를 바꿔야 한다. 민원 처리를 얼마나 잘하는지가 아니라 기업가를 얼마나 잘 발굴해 키웠는지 보고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임 센터장=정부 사업의 상당수는 예산으로 건물을 지어서 협회를 세우고 예산을 나눠주는 데 그친다. 스타트업이 크려고 하면 규제로 막고 지원도 하지 않는다. 논란이 있는 산업엔 정부가 기본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고 신산업 토양을 만드는 리더십이 없다.

▶박 교수=새로운 시대가 왔는데 우리는 준비가 안 돼 있다. 현장의 기업가정신이 부족하다. 기업가정신이 활활 타오를 여건이 안 돼 있어서다. 현장과 연결된 연구실에서 진정한 지식이 나온다. 기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 정부의 담당 실·국장도 자신이 기업을 경영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차 부국장=우리가 바꿔야 할 게 많지만 가장 시급하고 핵심적인 것이 무엇인지 지적해달라.

▶차석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창의적 환경이 중요하다. 창의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키워지는 것이다. 창의력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적 제약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선전은 규제 완화를 통해 창조적 파괴가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일종의 거대한 실험장이다. 상상도 못할 규모로 10년 넘게 혁신적 실험을 하니까 이런 결과들이 튀어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제도 개선에 그쳐선 안 된다. 속도가 중요하다.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도를 바꾸려면 기술 발전과 같은 속도로, 아니 더 빠르게 바꿔야 한다.

▶김 대표=10년 뒤에는 조선 철강 자동차가 한국의 주력산업이 될 수 없다. 디지털산업 위주로 돌아갈 텐데 이 산업은 국경이 없다. 한번 해외 기업에 시장을 빼앗기면 완전히 밀린다. 데이터 기반 사회에서 우리의 데이터를 모두 해외 기업이 보유하게 된다. 정부가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수단인 것 같다.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니 창업이라도 하라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의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글로벌 벤처가 한국에서도 나오려면 그런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구 변호사=중국 스타트업을 보면 한국 스타트업에선 느낄 수 없는 절실함이 보인다. 한국 스타트업에 절실함이 부족한 이유는 ‘대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기업을 일으켜 수백·수천 배 수익을 올린 사례가 도처에 있다. 그러니까 창업에 뛰어든 젊은이들 눈이 충혈되고 얼굴에서도 절실함이 보인다. 한국에서도 ‘벤처 대박’ 사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선전=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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