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

입력 2018-01-25 16:45
수정 2018-01-25 17:32
"개인 사생활 보호…테러 위협 막는 것 만큼 중요"
텔레그램,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암호화폐 활용 나설 것


[ 추가영 기자 ]

연초부터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은 두 가지 소식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월 실이용자(MAU) 기준 전 세계 1억 명이 사용하는 메신저인 텔레그램이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과 암호화폐(가상화폐)를 만든다는 계획이 그 첫 번째다. 지난해 말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텔레그래프 등을 통해 텔레그램의 암호화폐 발행 계획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텔레그램은 오는 3월 코인을 발급해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3억~5억달러(약 3200억~53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모을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다른 하나는 이란 정부가 지난해 마지막날부터 텔레그램 사용을 2주간 차단했다는 소식이다. 9년 만에 일어난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이란 정부는 밝혔다. 텔레그램은 이란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국민 메신저’다.

◆암호화 메신저의 암호화폐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34)가 증시에서 기업공개(IPO)를 하는 대신 ICO를 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란 반응이 많다. ICO를 통해 앱(응용프로그램) 자체 암호화폐 경제를 구축할 수 있고, 이란 등 각국 중앙정부의 통제나 개입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인 두로프 CEO는 텔레그램에 앞서 개발한 소셜미디어 브콘탁테(VK)에 있는 반정부 인사들의 계정을 폐쇄하고 이들의 개인정보를 넘기라는 러시아 정부의 압박을 받았다. 이 같은 정부 요구에 불응한 대가로 VK의 경영권까지 포기해야 했다. 이후 정부를 포함한 제3자의 정보 접근을 철저히 막는 보안성에 초점을 맞춰 개발한 메신저가 텔레그램이다. 모든 메시지를 암호화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텔레그램이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인 ‘텔레그램오픈네트워크(TON)’와 암호화폐 ‘그램’을 발행하면 메신저 이용자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암호화폐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암호화폐를 사용하면 텔레그램 결제시스템으로 국제 송금 시 각국 정부나 은행의 규제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고, 사용자 입장에선 수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텔레그램·페이스북 “암호화폐 활용”

2016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무대에 올랐을 때나 사진 공유 앱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는 것을 보면 두로프 CEO의 모습은 경영자라기보단 록스타에 가깝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인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올 블랙 의상만 입고 다닌다.

매일 비슷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포함해 그는 다양한 면에서 미국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와 비교된다. 해커 출신인 두 사람은 1984년생 동갑이다. 두로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만든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를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두로프가 2006년 내놓은 VK는 러시아의 페이스북으로 이름을 날렸다. VK의 기업가치는 3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로프와 저커버그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시기에 암호화폐를 사업에 활용할 방안을 내놨다. 저커버그는 암호화폐의 탈중앙화 아이디어에서 정치 편향이나 혐오 메시지 확산 등 페이스북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암호화폐에 대해 공부하겠다는 2018년 새해 계획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북도 텔레그램과 마찬가지로 메신저 와츠앱을 중심으로 암호화폐를 활용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텔레그램으로 크렘린에 멋지게 ‘복수’

두로프 CEO는 반항아 기질을 타고 났다. 고등학생 때 싫어하는 선생님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학교 시스템을 해킹했다.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VK 일부 계정을 폐쇄하라고 요청했을 때도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강아지 사진을 VK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으로 응수했다. 러시아에서 소셜미디어를 자주 사용하고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를 ‘VK 세대’라고 부른다. 두로프는 VK 세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과유불급이었던 걸까. 그가 러시아 정부를 자극하면서 탄압이 점점 노골적으로 변했다. 러시아 정부는 급기야 운전도 하지 않는 두로프에게 교통사고 혐의를 씌웠다. 결국 크렘린과 결탁한 자본으로 운영되는 UCP와 Mail.ru가 두로프의 VK 보유 지분 12%를 모두 인수했다. 두로프 CEO는 지분 매각으로 3억달러를 벌었다.

‘플랜 B’가 가동됐다. 두로프와 천재 프로그래머로 알려진 그의 형 니콜라이 두로프는 미국 뉴욕 등지에서 암암리에 개발한 텔레그램을 2013년 공개했다. 이 무렵 마침 ‘스노든 사건’이 터졌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자 미 국가안보국(NSA)에서 근무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등의 내용을 담은 기밀문서를 폭로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정부 주도로 개인정보가 무단 수집될 수 있다는 위험이 드러나면서 별다른 홍보 없이도 텔레그램 이용자가 빠르게 늘었다. 텔레그램 본사는 독일 베를린에 두고 두로프 자신은 러시아를 떠나 세계 각지를 돌면서 지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에 임시 망명하기도 한 스노든을 두로프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테러 위협보다 사생활 침해가 더 무서워”

러시아에서 두로프는 ‘사생활 보호’의 상징적 인물로 통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애플에 총기 난사 사건 용의자의 스마트폰 암호를 풀라고 요청하자, 두로프는 “테러리즘의 위협을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생활 보호”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테러 당시에도 테러범들이 암호화된 메시지를 통해 테러를 계획하고 이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 텔레그램이 테러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해 두로프는 “테러범들은 다른 메시징 서비스도 사용했을 것”이라며 “텔레그램이든 다른 기술 기업이든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두로프 CEO는 이용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텔레그램을 팔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200억달러를 준다고 하더라도 팔지 않겠다”며 “이것은 내 인생을 걸고 보장한다”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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