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중국·질주하는 선전
선전 스타트업 이래서 강하다
다른 곳서 몇주 걸릴 부품, 화창베이 전자상가서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홍콩 인접한 입지, 발달한 물류망도 장점
좋은 날씨·개방적인 문화… 인구 90%가 외지인
화웨이·폭스콘·BYD 등 수준높은 IT기업 포진
스타트업에 경쟁적 투자
3년 전 세계 최대 전자쇼인 CES에 갔다가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회사 이름이 ‘Shenzhen(선전)’으로 시작하는 수백 개의 회사가 CES를 뒤덮고 있었다. 당시 CES에서 선전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말을 듣고 일부러 선전을 방문해 폭스콘 공장과 HAX라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액셀러레이터 등을 찾았다. 당시 급성장하는 선전의 역동성에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선전은 하드웨어에 관한 한 명실상부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인상을 받았다. 넘쳐나는 최첨단 고층빌딩, 도시 곳곳과 공항까지 연결된 지하철망, 시내를 누비는 전기버스, 현대적인 쇼핑몰, 공유자전거를 비롯해 알리페이 등 모바일결제를 응용한 신기하고 독특한 비즈니스모델의 제품과 서비스가 넘쳐났다.
선전 스타트업 생태계의 강점은 무엇일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강력한 하드웨어 생태계의 존재다. 다른 곳에서는 구하는 데만 몇 주씩 걸릴 부품을 선전의 화창베이 전자상가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잘 발달한 물류망과 홍콩에 인접한 입지조건은 제품을 세계로 배송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선전으로 모여든다. 자기 나라에서는 몇 달이 걸릴 제품 개발을 선전에서는 몇 배 빠르게 추진할 수 있어서다. 더욱 저렴하게 제품을 생산해 세계에 수출할 수도 있다. 짝퉁만 만드는 줄 알았던 선전은 이제 제품 디자인에서도 한 단계 도약했다. 3년 전만 해도 조잡해 보였던 선전 회사들의 제품은 월드클래스 디자인으로 올라섰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시장 등을 석권하고 있는 오포, 비보와 샤오미의 스마트폰은 삼성전자 LG전자의 제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가격은 훨씬 싸다.
선전 스타트업 생태계의 두 번째 강점은 좋은 날씨와 외지인에게 개방적인 문화다. 많은 중국인이 선전에서 살고 싶어 한다. 선전은 날씨가 좋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다른 중국 대도시와 비교해 비교적 공기가 깨끗하기 때문이다. 중국 내의 인재도 빨아들인다. 작은 어촌 마을에서 급성장해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외지인이다. 성공을 갈망하며 모인 젊은이들의 도시다.
세 번째는 수준 높은 정보기술(IT)기업이 모인 경쟁적 기업생태계다. 화웨이, 폭스콘, BYD 등 수십만 명을 고용하는 대기업부터 ZTE, TCL 등 중견 전자업체, 스마트폰의 신흥강자 오포, 비보, 그리고 시가총액 500조원을 자랑하는 인터넷의 강자 텐센트, 드론의 세계 1위 기업 DJI 등이 모두 선전에 포진해 있다. 이들 대기업 출신 인재가 나와서 창업하니 수준 높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나온다. 이들 기업은 경쟁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한국의 하드웨어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떤가. 많은 이가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는 삼성, LG 등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 스타트업에는 우호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삼성의 사내벤처인 C랩이 많은 하드웨어 창업팀을 배출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기업 출신의 창업은 부족한 편이다. 특히 하드웨어 회사를 키우는 데는 소프트웨어 회사보다 시간과 돈이 더 필요하다. 이런 사업 특성을 잘 이해하고 긴 안목으로 투자해주는 벤처캐피털은 부족하다. 무엇보다 민간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하기보다 조금씩 프로젝트별로 예산을 나눠주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 방식이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자생력을 해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선전, 그리고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중국 이상으로 규제를 풀어 뭐든지 해볼 수 있는 창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혁신기업에 인재와 자금이 몰릴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선전=임정욱 <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