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펫 리포트 (5)·끝 - 한국에서 개로 산다는 것
[ 김보라/구은서 기자 ] 한국 사회에서 반려동물과 관련된 숫자 세 개를 뽑아봤다. 1000만, 6조원, 10만 마리. 순서대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 수, 3년 안에 이를 관련 산업의 규모, 지난해 발생한 유기동물 수다. 유행처럼 번지는 입양과 관련 산업의 빠른 성장,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와 제도가 이 숫자에 나타나 있다.
반려동물과의 공존 및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 어떤 문화가 필요할까. 최영민 서울시수의사회 회장,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 등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개의 관점으로 본 대한민국의 반려동물 문화’라고 부르면 될 듯하다.
아침에 나가고 밤에 돌아오는 주인님
하루 종일 아파트서 홀로 지내 쓸쓸
서울 옥수동 S아파트에 사는 10살 웰시코기 ‘구름이’
나의 주인은 30대 회사원 부부입니다.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하며 나를 입양했습니다. 앙증맞게 짧은 다리, 큰 눈과 귀, 길게 튀어나온 입이 귀엽다며 서울 가로수길의 한 펫숍 유리장에서 나를 꺼내줬죠. 신바람이 났습니다. 좁은 장을 벗어나 햇살이 잘 드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으니까요. 멋진 옷과 장난감, 맛있는 사료와 푹신한 침대도 있었습니다. 기쁨은 길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간식 하나를 던져주고 출근하는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 쓸쓸했습니다. 하루 종일 문 앞에 누운 채 귀를 쫑긋 세워봅니다. 가끔은 짖어도 보고요. 아무 답이 없습니다. 캄캄한 저녁이 되면 엄마의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엉덩이를 반갑게 흔들며 산책을 가자고 졸라봅니다. 엄마는 피곤한지 금방 쓰러져 잠이 듭니다. 옷, 간식보다 주인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소중한데…. 이제 나에게 그리 긴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주인은 알까요.
강아지 땐 배변 실수로 혼나다 버려져
두 번째 주인은 내가 아프자 보호소로
유기견 보호소에 사는 7살 포메라니안 ‘뽀뽀’
주인이 두 명 있었습니다. 눈도 아직 못 떴을 때 안아준 첫 번째 주인과는 서너 해를 함께 살았습니다. 나는 배변 실수를 자주 했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나와 주인을 해칠까 봐 짖고 달려들었죠.
주인은 내가 하는 행동마다 고함을 지르곤 했지만 왜 야단을 치는지 몰랐습니다.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잘못을 알기에 주인의 언어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주인은 어느 날 차를 타고 내가 찾을 수 없는 먼 곳까지 달리더니 길가에 나를 내려두고 떠났습니다.
보호소에서 기다리다 두 번째 주인을 만났습니다. 유기견이라 불쌍하다며 데려갔습니다. 얼마 전 다리에 염증도 생기고 눈병에도 걸렸습니다. 털도 점점 더 많이 빠졌지요. 두 번째 주인은 나를 보호소로 데리고 왔습니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 채.
뜬장에 갇혀 땅 한번 밟지 못해
끌려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대요
개농장에서 태어나 이름도 없는 ‘…’
어두컴컴한 작은 방에서 태어나 철창 안 좁은 우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형제도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일찍 헤어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는 비슷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땅을 밟고 살아야 하지만 흙냄새 한번 맡아보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는 이 ‘뜬장’에서 살았습니다. 좁은 곳에서 웅크린 채 눈과 비, 추위와 더위, 매서운 바람을 다 맞았지요. 뜬장 안의 친구들과 추울 땐 포개 눕고 아플 땐 서로 핥아가며 버팁니다. 더러운 물과 누군가가 버린 오물을 굶주림 때문에 겨우 먹지요. 밖의 삶이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뜬장의 문이 열리면 함께 있던 친구가 끌려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언젠가는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요.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용견 사육농장이 있는 나라. 그 나라에는 1만7076곳의 식용견 사육농장이 있다고 합니다.
병원서 태어나 햇볕 본 적 없어요
매일 혈관주사·약물…이게 내 운명
실험견으로 태어난 4살 비글 ‘7358339’
차가운 쇳덩어리와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비글은 사람을 잘 따르고 성격이 온순하지요. 그것이 내가 실험견이 된 이유라고 합니다. 엄마도 실험견이었고요. 세계 실험견의 94%가 비글이라고 하네요.
사람들이 먹는 약과 각종 주사약, 농약과 화학제품까지 모두 나와 나의 친구들 몸을 거쳐 갔습니다. 눈에 매일 농약을 집어넣어야 했던 날도, 혈관 주사를 지겹도록 맞아야 했던 날도 있습니다. 주삿바늘과 엑스레이는 익숙해져 무섭지도 않지요. 5년만 버티면 실험견으로서의 삶은 끝난다고 합니다. 법률에 실험이 끝난 실험견은 안락사하도록 돼 있다네요. 더러 구조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사실 안락사보다 무서운 건 따로 있습니다. 바깥세상입니다. 케이지 밖을 나가는 일, 햇빛을 보는 일, 땅을 밟고 서는 일,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 이 모든 게 두렵습니다.
김보라/구은서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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