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마식령

입력 2018-01-18 17:48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젊은 김삿갓이 겨울날 마식령(馬息嶺)을 넘을 때다. 눈보라가 심해 한발짝도 떼기 힘든 상황에서 마침 초가집을 발견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그는 주인을 부른 뒤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젊은 처녀가 알몸으로 그를 껴안고 있었다. 그 옆에서 노파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파는 김삿갓이 마음에 들어 손녀 복단이와 같이 자게 했던 것이다. 김삿갓이 오줌을 누러 밖에 나오니 마식령의 아름다운 눈 경치가 들어왔다. 시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송이송이 날리는 것이 춘삼월 나비 같고(飛來片片 三月蝶)/밟고 가는 소리 유월의 개구리 울음 같네(踏去聲聲 六月蛙)/추워지면 못 가겠노라 눈 핑계도 대는데(寒將不去 多言雪)/취하면 혹 머무를 수 있을까 다시 잔을 드노라(醉或以留 更進盃).’ 복단이가 마음에 들어 머무르고 싶어진 김삿갓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마식령은 해발 768m로 함경남도 문천군에 있다. 말도 이 고개를 넘기 힘들어 쉬어간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관서지방과 관북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로 역할을 해왔다. 이곳을 기점으로 남서방향으로 마식령산맥이 뻗어내린다. 임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마식령은 스키장을 만들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눈이 많이 내리는 데다 계곡들은 스키장 슬로프를 만드는 데 적합하게 형성돼 있다. 1926년 우리나라 최초로 이곳에 스키장이 들어섰다. 1930년엔 ‘제1회 조선스키선수권대회’도 열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2년 12월 이곳에 스키장을 다시 만들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키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체제 선전과 외화벌이 등을 노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스위스 유학시절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겨 탄 것으로 알려진 그는 여러차례 현장을 방문해 속도전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스키장 건설은 의도대로 잘 되지 않았다.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유엔 제재에 따라 대북 스키장 설비 금수 조치를 내렸다.

다급한 북한은 백두산 삼지연 근처 스키장에 30~40년 전 설치된 리프트를 뜯어 마식령 스키장에 설치했다. 2013년 12월 스키장을 완공한 뒤 김정은 치적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들도 거의 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지난 17일 마식령 스키장에서 남북 스키 선수 공동훈련을 진행키로 했다(남측은 대표선수가 아니라 유망주 참여). 북한은 이번 기회에 외화벌이를 위해 마식령 스키장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아무리 홍보에 안간힘을 써도 수시로 외국인을 억류하고, 핵·미사일로 세계를 위협하는 ‘깡패국가’에 가려고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