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사무실서 740자 분량 성명
"보수 궤멸시키려는 정치 공작이자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보복"
"특활비 보고 받았냐"는 질문엔 대답 않고 그대로 차에 올라
민주당 "사과 없는 기자회견 실망"
[ 박종필/유승호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은 17일 검찰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 수사와 관련,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이 보수를 궤멸시키기 위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짜맞추기식 수사를 하지 말고 나에게 (책임을) 물으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발표한 740자 분량의 성명을 통해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매우 송구스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나라”라며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정 수행에 임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지난 5년 동안 4대강 살리기와 자원외교, 제2롯데월드 등 여러 건의 수사가 진행돼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저와 함께 일했던 고위 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는 없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고 현 정부를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으라는 것이 저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민 모두가 총단합해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뤄냄으로써 우리의 국격을 다시 한번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성명 발표 후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가 손을 씻고 나와 기자들과 악수했다. 이후 사무실을 떠날 때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것이냐” “특활비 보고를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답하지 않고 차에 탔다. 이 전 대통령은 성명 발표 도중 수차례 기침을 했으며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아침부터 모여 상황을 점검하고 문안을 좀 다듬었는데 마지막엔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다듬어 발표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엔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효재 전 정무수석, 이동관·김두우·최금락 전 홍보수석 등 이명박 정부 청와대 참모들이 함께 있었다.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 성명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습으로 비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사과 없는 기자회견이 실망스럽다”며 “더는 국민을 속이지 말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대단히 부적절한 성명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보수 궤멸을 위한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종필/유승호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