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사모펀드의 기업 구조혁신]8. 전용선 전문 선사 에이치라인 설립한 한앤컴퍼니

입력 2018-01-15 18:39
해운사 선제적 구조조정 이끌며 투자 기회 발굴


≪이 기사는 01월09일(11:0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해까지 3년간 연평균 영업이익률 24.4%. 같은 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마진률 연평균 42.0%. 4차 산업혁명을 등에 업은 반도체나 정보기술(IT) 업체의 성과가 아니다. 시황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해운업체가 이룬 성과다.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2014년 7월 설립한 벌크 전용선 전문 해운사 에이치라인해운은 매년 20%를 훌쩍 넘는 안정적인 영업이익률을 올리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설립 1년만인 2015년 대한해운을 제치고 매출 기준 국내 2위 벌크선사로 자리매김했다. 영업이익에서는 1위인 팬오션도 지난해 추월했다. 한앤컴퍼니는 그 어렵다는 해운업에서 어떤 마술을 부린걸까?

◆해운업의 리스크 요인을 파악하다

2010년 한앤컴퍼니를 설립한 한상원 대표는 투자 대상을 물색하면서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뭘까’ 고민했다. 모건스탠리PE 대표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온 해운업이 떠올랐다. ‘세계 10대 무역대국’ 한국에서 해운업을 빼놓고 투자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1만2000포인트를 육박하던 발틱운임지수(BDI)는 2011년초 1000포인트까지 떨어진 상태. 해운업체들의 재무상태가 빠르게 악화됐다. 경기가 바닥일 때 투자하면 업계 구조조정에도 도움을 주면서 경기 반등시 수익도 올릴 수 있겠다고 판단한 한앤컴퍼니는 본격적으로 해운업 연구를 시작했다.

첫 투자 기회는 2012년 9월께 찾아왔다. 유동성이 악화된 STX그룹이 국내 1위 벌크선사 STX팬오션(현 팬오션)을 매물로 내놨다. 법정관리 중이던 국내 2위 벌크선사 대한해운도 거의 동시에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한앤컴퍼니는 두 회사 모두 인수를 검토했다. 거래는 결국 성사되지 못했지만 두 차례에 걸쳐 벌크 선사 인수를 위한 실사를 벌인 건 해운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해운사들이 어려워진 건 용대선 사업 때문이었다. 해운업 경기가 좋던 시절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싸게 빌린(용선) 배를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 해운사에 비싸게 빌려주고(대선) 차익을 벌었다. 본업보다 수입이 짭짤했다. 하지만 시황이 꺾이자 용대선은 독이 됐다. 용선료는 내야 하는데 배를 빌려간 중소형 선사들이 돈을 갚지 못해서다.

용대선이 아니어도 철광석, 석탄, 곡물, 연료 등을 실어나르는 벌크선 사업은 부침(浮沈)이 심한 사업이었다. 화물 수요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다보니 영업실적이 글로벌 경기에 크게 좌우됐다. 특히 전세계 물동량은 경기에 따라 급등락하는데 선박 공급은 비탄력적이어서 실적의 변동성이 더 컸다. 운임이 상승하면 해운사들이 많은 돈을 벌어 경쟁적으로 배를 짓고, 이는 곧 선복 과잉에 따른 운임 하락으로 이어져 실적이 악화되는 싸이클이 반복됐다.

◆해운업도 안정적일 수 있다

한앤컴퍼니는 이렇게 변동성이 큰 해운업에서도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사업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량 화주들과 장기 운송계약을 맺고 철광석, 가스, 석탄 등 화물을 운송하는 이른바 ‘전용선’ 사업이었다. 계약이 있어야 배를 짓는데다 운임도 미리 정해놓기 때문에 시황에 따른 리스크가 거의 없었다.

김재민 한앤컴퍼니 전무는 “포스코(신용등급 AA+), 한국전력 자회사(AAA), 한국가스공사(AAA) 등 장기계약을 맺는 화주들은 대부분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들이어서 화주가 어려워져 운송료를 받지 못하는 ‘화주 신용 리스크’도 거의 없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무는 “한국은 LNG 수입 세계 2위, 석탄 수입 세계 4위 국가여서 장기운송계약을 통한 해상 운송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전용선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한앤컴퍼니는 2013년 봄 한진해운을 찾아갔다. 한진해운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던 때였다. “선제적 구조저정을 위해 전용선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한진해운도 매각 필요성에 동의했다. 시황이 회복되면 되사올 수 있도록 일부 지분을 남겨놓고 전용선 사업을 매각하자는 결론이 났다.

그해 12월 한앤컴퍼니는 장기운송계약이 맺어진 한진해운의 전용선 36척(벌크29척, LNG선 7척)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양측이 설립한 합작사에 한진해운이 선박을 현물출자하고 합작사 지분 76%를 한앤컴퍼니가 3000억원에 인수하는 구조였다. 약 1조4000억원의 선박금융과 금융부채도 합작사로 함께 이전됐다. 이 거래로 1000%를 육박하던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약 680%로 낮아졌다. (한앤컴퍼니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잔여지분을 모두 인수한다.)

◆추가 인수 통한 규모의 경제 확보

한진해운으로부터 사온 36척의 전용선으로 에이치라인해운이 공식 출범한 건 2014년 7월이었다. 포스코, 현대글로비스,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 자회사 등 화주들의 동의를 받아 장기운송계약을 양도받는데 7개월 정도가 걸렸다. 이로써 매출의 100%가 우량 화주로부터 나오는 국내 유일의 해운사가 탄생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한앤컴퍼니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유류할증료(BAF)를 통해 연료비가 상승하면 운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선박을 살 때 빌리는 선박금융 대출 금리는 스왑 거래를 통해 모두 고정금리로 바꿨다. 환율 변동 리스크도 헤지했다. 예측이 어려운 모든 시장 리스크를 제거한 셈이다.

그렇다고 걱정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한진해운의 장기운송계약 중에는 2018년이면 만기가 돌아오는 계약이 8건에 달했다. 아직 시황이 좋지 않아 신규 수주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 2018년 이후에는 매출 감소가 불가피해 보였다. 이런 걱정을 해소할 기회가 찾아온 건 2015년 말이었다. 역시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던 현대상선이 자사의 벌크 전용선 사업도 인수해줄 것을 제안해왔다. 벌크 전용선 매각은 현대증권 매각과 함께 현대상선이 채권단에 제출한 추가 자구계획안의 핵심이었다.

한앤컴퍼니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또 한번 대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도우면서 에이치라인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는 ‘윈윈거래’였다.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15년 12월31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2016년 2월5일 본계약을 맺었다. 에이치라인이 현대상선에 약 1300억원(1억957만달러)을 지급하고 포스코, 한국전력 등과 장기운송계약이 맺어있는 벌크선 12척과 3000억원(2억5310만달러) 규모의 부채를 인수하는 거래였다. 이 거래로 에이치라인은 시장점유율 40%의 국내 1위 벌크 전용선사로 부상했다. 현대상선은 자구 노력과 회생 의지를 채권단에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영 효율화로 영업 확대 기반 마련

2016년 에이치라인의 영업이익은 1935억원으로 2015년 1326억원에 비해 비해 46% 늘어났다. 영업이익률도 2015년 22.6%에서 2016년 29.6%로 높아졌다. 경쟁사인 팬오션과 대한해운의 2016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오히려 줄어들었고, 두 회사 모두 영업이익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과 대비된다. 이는 단순히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벌크 전용선 사업을 인수해 합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을 효율화한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과거 해운사들은 선박관리를 그룹내 선박관리(SM) 계열사에 맡겼다. SM은 선원들이 배 위에서 사용하는 선용품과 각종 기가재를 공급하고 급유에서 안전관리, 보험관리에 이르기까지 등 다양한 선박관리를 제공하는 기능이다. 문제는 그룹내 타 계열사에 맡기다보니 원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에이치라인도 처음에는 선박관리를 한진SM(현 지마린서비스)에 아웃소싱했지만 곧 내제화했다. 선박 부속품과 선용품, 보험료 등 모든 구매항목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원가를 약 20% 절감했다.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갖추면서 에이치라인해운은 설립 2년여만인 2016년 11월 신용등급이 BBB+에서 A-로 상향조정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국내 해운사의 신용등급이 올라간 건 에이치라인이 처음이었다.

원가 경쟁력과 우수한 신용도, 건전한 재무구조는 영업확대를 위한 디딤돌이 됐다. 에이치라인은 올해 하반기 브라질 최대 철광석 업체인 발레와 2척, 현대글로비스와 1척의 장기운송계약을 맺었다. 김 전무는 “그동안은 운임이 너무 낮아 화주나 해운사 모두 장기운송계약 체결을 미루는 분위기였다”며 “최근 일일 운임이 바닥에 비해 2.5배 오르는 등 시황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어 장기 운송계약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는 유조선(wet bulk) 등 신규 사업에도 진출해 종합해운사로 성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유창재/안대규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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