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을 포기하고 퇴임하는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금융관료를 지금의 3분의 1로 확 줄여보면 어떨까”라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황 회장은 “그러면 금융산업이 지금보다 잘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은 강경 일변도 규제 때문에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20년 뒤도 뻔하다”는 게 황 회장의 진단이다.
황 회장이 현장에서 본 관치금융 폐해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을 증명하듯 심각한 수준이다. “법과 규정의 미세한 차이를 이용해 사업을 무산시킨 사례가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황 회장은 “이런 풍토 속에서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금융 관료들은 그 반대다. 금융의 삼성전자가 왜 필요하냐는 식이다.
‘관료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금융에서 더 절박하게 들리는 이유는 부끄러운 국제 위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계 100대 은행에서 국내 5대 은행그룹은 하위권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금융은 노동과 더불어 만성적 취약부문으로 꼽힌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137개국 중 74위로 노동시장 효율성(73위)과 함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은 주범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생산적·포용적 금융’을 말하지만 관치가 변할 조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당국이 하나금융그룹에 회장 선임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금융위원회가 어제 내놓은 ‘금융혁신 추진방향’도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강성노조의 경영개입이라는 ‘노치(勞治)’와 손을 잡겠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혁신성장’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관료를 줄이라는 건 ‘규제 원천’을 손봐야 한다는 절규다. 금융 관료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부처 관료는 말할 것도 없고, 규제입법을 양산하는 국회의원도 확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