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극 탐사 30년… 자원보고 빗장 풀다

입력 2018-01-14 17:09
수정 2018-01-15 05:33
항공기·배로 5~6일 걸리는 곳
세종·장보고기지 34명 상주
초창기엔 자원 확보 집중
최근엔 기후온난화 연구 활발

30년간 201편 논문 발표
신종 박테리아·무척추동물 발견
학명에 '남극·세종' 이름 붙여
남극 생물 유전자 지도 제작

남극 내륙 진출 경쟁 치열
인력·물자 옮기기 힘든 환경
외국 항공·보트 빌려타기 일쑤
무인기·잠수정 등 개발해야


[ 박근태 기자 ]
남미 대륙과 마주하고 있는 남극 반도는 세계에서 기온 상승 속도가 가장 빠른 곳 중 하나다. 남극 반도의 끝자락 킹조지섬에는 한국이 처음 극지방에 세운 세종과학기지가 있다. 1988년 1월 14명의 대원과 함께 세종기지 첫 월동연구대원으로 남극 땅을 밟은 이방용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59)은 30년 새 일어난 지구온난화 영향을 실감한다고 했다. “처음 남극을 밟았을 때와 비교하면 기지 인근 빙하가 수백m 후퇴하고 해류 변화로 해안선이 침식되는 등 환경이 눈에 띄게 바뀌었습니다.” 올해는 세종기지가 설립된 지 30년 되는 해다. 한국의 극지 연구도 30년을 맞았다. 당시 청년 월동대원들은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연구자가 됐다.

극지 진출 발판 된 세종기지

남극 대륙은 지질적으로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남미 대륙에 연결돼 있어 철광석과 석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보고기지가 마주한 로스해를 비롯해 남극 해저에는 막대한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빙양(남극 대륙 주위 해역)은 크릴새우가 풍부해 수염고래, 해표, 펭귄 등 가장 다양한 해양생물 서식지로 꼽힌다. 남극은 반세기 넘게 미국과 러시아, 영국 등 몇몇 선진국만의 독무대였다. 매년 4~8월 밤과 눈폭풍이 계속되는 극한의 환경은 쉽사리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극지 연구의 불모지였던 한국은 1986년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2년 뒤 세종기지를 건설하면서 비로소 극지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은 남극 진출의 후발주자였지만 30년 만에 그 위상은 크게 올라갔다. 세종기지에 이어 북극 다산기지, 남극에 장보고기지가 잇따라 문을 열고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건조해 활발한 극지 연구를 벌인 결과다. 지금은 매년 두 기지에 17명씩 34명의 월동대가 상주하고, 100~150명에 이르는 과학자가 남극을 찾고 있다. 주요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은 201편에 이른다.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은 “기지 운영과 연구 성과 측면에서 남극조약 가입국 53개국 중 10위 정도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자원보고 남극, 기후변화 연구 성지로

남극 진출 초창기 가장 큰 목표는 자원 확보였다. 세종기지는 1993년부터 주변 지역의 지질 조사 활동을 벌여 인근 바다 600m 지점에서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가스하이드레이트(얼음으로 된 천연가스)를 발굴했다. 한국의 연간 소비량의 200배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다.

하지만 각국이 남극의 지하자원을 상업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최근 연구 주제는 기후온난화 등 인류 공존에 필요한 연구로 옮겨가고 있다. 남극은 지구온난화를 연구할 최적지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온실가스와 성층권 오존 구멍의 영향으로 남극 반도에 강한 바람이 불면 기온이 올라간다고 보고 있다. 남극 바람은 탄소가 풍부한 남극 심층 해수를 표층으로 끌어올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세종기지는 남극에서 연중 바람이 가장 강한 곳이다. 세계기상기구(WMO)도 이런 특수성을 높게 평가해 세종기지를 주요 관측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과학자들은 남극이 다양한 생명체의 보고라는 점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세종기지 주변에선 8종의 신종 박테리아와 11종의 신종 무척추동물이 발견됐다. 극지연구소는 2014년 발견한 새우 ‘사촌뻘’ 되는 플랑크톤인 ‘티그리오푸스 킹세종엔시스’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한국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국제연구진이 펭귄이 바다에서 울음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입증했다. 유성과 고층대기연구 등 천체물리와 우주 분야의 연구도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03년 세종기지에서 실종된 동료를 구출하러 나섰다가 보트가 뒤집히면서 전재규 연구원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윤 회장은 “한국의 극지연구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2005년 전 연구원을 기려 세종기지 부근에서 발견한 신종 토양미생물에 그의 이름을 딴 학명을 붙였다. 2007년에는 남극 로사멜섬 부근에서 발견한 해저화산에 ‘재규 놀(둔덕)’이란 이름을 붙였다.

첨단 장비 투입해 내륙 진출 ‘러시’

최근 10년 새 세계 각국은 남극 대륙 더 깊숙한 곳까지 진출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남극 연안을 벗어나 내륙 진출이라는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대륙 내륙에 기지를 운영하는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할 만큼 대륙 중심은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후발 국가인 중국은 극지에서 작동하는 무인항공기 등 첨단 장비를 투입해 본격적인 탐사에 나서고 있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55도까지 내려가는 남극 중심으로 인력과 물자를 옮기는 일은 극한의 기술과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한국은 남극 대륙에 장보고기지를 세우며 대륙 진출의 발판을 닦았지만 아직 연안형 연구에 머물고 있다. 남극점까지 탐사 루트를 발굴하려면 독자적인 운송 수단과 첨단 장비 투입이 필요하지만 항공기와 헬리콥터 도입은 예산과 인력 운영 문제로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윤 회장은 “앞으로 남극에서 도전 과제는 쇄빙선과 무인항공기 같은 첨단과학 장비를 투입해 더 많은 과학자를 남극 내륙으로 깊숙이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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