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중국의 꿈, 일본의 꿈

입력 2018-01-10 17:56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 내걸고
"세계 AI 혁신 주도" 선언

"강한 일본 되찾자" 다짐하며
'기업 유턴→일자리 풍년' 실현

한국도 국민 시선 미래로 모을
'번영과 도약의 꿈' 꿀 수 없나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의 국정 슬로건인 ‘중국몽(中國夢)’에는 “5000년 역사의 유산을 집대성해서 진정한 강국(强國)을 완성하겠다”는 비원(悲願)이 담겨 있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중국이 역사상 가장 강했던 때는 한나라 시대다. 문화적으로 가장 융성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때는 당나라 시대였다. 이 시기에 육상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제국까지 교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중국이 약세를 면치 못한 바다에서 한때나마 세계적으로 가장 강했던 때가 있다. 정화 제독의 함대가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명나라 영락제시대였다. 그런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 영락제시대의 위상을 뭉뚱그려서 되찾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자.” 그런데 ‘위대한 부흥’이라는 구호는 국민을 열광시켜서 국력을 결집하기에 늘어지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내놓은 슬로건이 ‘중국몽’이다.

시진핑은 비전 제시에 머물지 않았다. 비전을 실현할 국가경영전략도 내놨다. ‘일대일로(一一路)’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경제 외교 문화 군사 등 각 분야에서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런 비전과 전략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나가고 있다. 대륙(一)을 통해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유럽으로 물밀 듯이 진출하고 있고, 대양(一路)을 통해 동남아 서남아 아프리카 중남미로 세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세계 경영’을 뒷받침해줄 자금줄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출범시켰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이렇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한국에 뒤졌지만,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는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2030년까지 AI 분야 세계 최강국에 올라서는 것을 목표로 베이징 외곽에 대규모 AI연구단지 조성에 들어갔다. 지난달 31일 신년사를 발표한 시진핑의 집무실 서가(書架)에 《마스터 알고리즘》과 《증강현실》이라는 제목의 AI 관련 서적이 꽂혀 있어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시진핑과 중국의 ‘꿈’은 하나둘씩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AI를 받쳐주는 시스템반도체, 2차전지,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에서 세계 1위 수출국가로 올라섰다. 지난해 미국 MIT가 선정한 50대 글로벌 혁신기업 명단에 중국 기업 7곳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한 곳도 없었다. 지난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은 “중국 기업들이 점령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중국 측 참가 기업 수가 1379곳으로 전체(3900여 곳)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중국 인터넷기업 바이두가 전시회장에서 연 행사에는 세계 기업 대표들이 몰려들었다. 바이두 부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보쉬 등과의 AI 제휴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중국은 AI산업의 핵심인 자본, 시장, 기술, 정책을 모두 지니고 있다. 지금부터 세계 AI 혁신을 ‘중국의 속도(China speed)’로 끌고나가겠다”고 선언했다.

“흔히들 중국이 한국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고 한다. 웃기는 얘기다. 한국을 추격대상으로 여긴다는 건 우리의 착각이다. 중국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만 길을 못 찾고 허둥대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경제 수장을 맡았던 원로의 탄식이다.

중국만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니다. 시진핑(2012년 11월)보다 한 달 늦게 집권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첫 신년사에서 “강한 일본을 되찾아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속도감’과 ‘실천력’을 강조했다. 실행과제로 과감한 규제 혁파를 실천한 덕분에 2015년 한 해에만 724곳의 기업이 해외에서 돌아왔다. 그 덕분에 지난해 일본 제조업 일자리가 7년 만에 1000만 개를 돌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나아지게 하는 게 새해 목표”라고 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고, 아쉬움도 남는다. 국민 모두의 마음을 모으고, 설레게 하고, 미래를 향해 신발 끈을 다시 매게 하는 가슴 벅찬 비전과 슬로건은 없을까. 모두가 함께 꾸고 이뤄나갈 ‘대한민국의 꿈’이 그립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